최근 흑해 연안에 있는 Грузия(그루지야)가 영어식 발음인 Georgia(조지아)로 명칭을 바꿔 불러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고 한다. 어차피 이 나라(앞으로 조지아라고 부르겠다.)는 자신들만의 언어(조지아어)와 고유 문자(므헤드룰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러시아어의 방식만을 따를 필요가 사실은 전혀 없는 나라이며, 러시아어보다는 아직 영향력이 훨씬 큰 국제 공용어인 영어식으로 바꾸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금 당장은 어색하지만 그루지야를 조지아라고 부르자는 건 우리가 단지 익숙해지기만 하면 되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런데 사실 자국인들은 자기네 나라를 조지아라고 부르지 않고, '사카르트벨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자국민들은 외국인들에게 '우리 나라를 사카르트벨로라고 불러 주세요'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 세 가지 방식으로 불리는 게 너무 복잡한데 그냥 영어식으로 통일하기 위해서 러시아식 이름을 버린 게 아닐까?


사실 언어권에 따라 전혀 상이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비단 조지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독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獨逸)이라는 단어는 사실 같은 한자를 쓰는 일본의 도이츠(ドイ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의 도이츠라는 발음은 일찍부터 활발하게 교역을 하던 네덜란드의 Duits(다위츠. 이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규정에 맞춘 것이다.)에서 비롯된 것이며, 네덜란드어로 독일은 Duitsland(다위츠란트)이다. 독일인 역시 자국을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고 부른다. 그러나 에스파냐(혹은 스페인)에서는 독일을 Alemania(알레마니아)라고 부른다. 프랑스도 Allemagne(알르마뉴)와 같은 식으로 부른다. 재미있게도 세계 공통어인 영어는 독일을 가리켜 Germany(저머니)라고 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그리스에서는 Γερμαν?α(예르마니아), 루마니아에서는 Germania(제르마니아)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내가 어떻게 주워 듣기라도 해서 알고 있는 범위이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핀란드에서는 독일을 saksa(삭사)라고 부르며, 폴란드에서는 독일을 Niemcy(니엠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독일은 자국의 이름이 정말 다양하게 불리지만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전망이다. 독일인 입장에서는 자국의 이름을 'Dok-il'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로 이름하는 것이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에게 '당신들, 독일이라는 이상한 이름 말고 우리와 통일된 명칭, 도이칠란트라고 꼭 불러주세요'라고 청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루지야가 조지아로 이름을 명칭을 바꿔달라고 호소한 것은 명칭이 너무 많아 복잡하기 때문에 영어로 통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변경의 배경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하여 발발한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한 대외 정책 변경 및 러시아와의 단교가 자리잡고 있다. 정치적인 갈등이 한 나라의 국명 음운 표기마저 바꿔놓게 된 것이다.


정치적인 입장의 변화로 국명이 변한 적은 유사 이래 몇번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군사 독재를 거치면서 '버마'에서 '미얀마'로 국명을 개칭되었던 것, 자이르 공화국이 쿠데타 이후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바뀐 것 등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명칭 발음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던 적도 적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일은 동유럽의 국가 벨라루스(Belarus)로, 과거에는 영어식 표기인 Belorussia에서 연원한 벨로루시를 썼지만, 러시아어 표기법을 확립하여 그대로 사용해주길 요청해 오자 영어 표기도 Belarus로 바뀌었고 자연히 우리도 벨라루스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과거에 루마니아 대사가 루마니아 대신 로마니아 ㅡ 실제 루마니아어 발음은 로므니아(Romania)가 맞다. ㅡ 로 바꿔서 불러줄 것을 요청한 적도 있었는데 이는 루마니아 사람들이 다치아(Dacia) 지역에 남은 진정한 로마 제국의 후예들이라는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조지아와 같은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국명의 발음을 특정 방식으로 통일 및 변경시킨 예는 별로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앞으로 사람들이 TV에서 조지아라는 말을 들으면 커피캔을 연상시킬 지 혹은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흰 국기를 떠올릴 지는 두고볼 일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명칭을 '사카르트벨로'라고 정했다면 완전히 보급되어 정착되는 데까지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을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