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걸그룹이 대세라서 그런지 TV 가요프로그램을 틀면 신인인지 컴백인지 분간이 안 되는 수많은 여자들이 무대로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번에 SBS 인기가요를 보는데 처음 보는 여성 그룹만 다섯이었다. 신기하게도 요즘 기획사들은 경제학의 기본인 수요-공급의 법칙을 모르고 있는건지, 아니면 '튀어야 산다'던 그 예전의 절박한 독창성의 갈급함을 망각해버렸는지, 경우의 수로 이미 다 재단된 노래에 같은 성형 및 주물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얼굴과 몸매를 단체로 포장해서 내놓는 상품이 시장에 쌓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창고에 적치되고 있다. 그나마 좀 튀어보겠다고 내놓은 것들도 영 시원치 않은데, 최근 받았던 가장 충격적인 사실들 몇 개를 나열해 보자면: '오렌지 캬라멜'이라는 딱 이름과 걸맞게 맞춤법 오류 수준인 정체 불명의 유닛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push push'라는 노골적인 19금 가사를 엉덩이를 흔들어가며 불러대는 '시스타'라는 가수는 대체 로리타 콤플렉스를 대놓고 이용하는 것인가? 도대체 노래 제목이 '이별 드립' 내지는 '고고씽'이라는 건 개념 없는 작사자의 졸작이란 말인가?


그런 혼잡한 흙탕물 침수 피해 가운데 가장 관심 있게 들었지만 별로 뜨지 않은 노래가 f(x)의 'NU ABO'였고, 가장 재미 없게 들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뜬 노래가 Miss A의 'Bad Girl Good Girl'이었다. 이들은 요즘 'shut off boy!'라는 다소 과격한 (그러나 허세 '쩌는') 가사를 뱉어내며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비를 제외하고 거품이 가장 많이 낀 가수를 꼽으라면 현 싸이더스 소속의 재범을 꼽겠지만 ㅡ 그는 정말 순수한 열정을 가진 특출난 것 없는 귀여운 근육질 청년이다. 진짜로. ㅡ 요즘 Miss A 에 대한 기사가 하나 올라온 것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손가락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Miss A 가 잘못했다거나 한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것을 콕 집을 수 있는 능력가도, 대중가요 전문가도 아니니까. 다만, 내 주면에서 이들을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일만은 좀 피했으면 좋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Miss A 는 고급 카페에서 파는 맛 없는 카푸치노와 같다. 뭔가 그럴 듯한 외양을 갖추고 있는데 실상은 옆집 슈퍼 앞 자판기에서 파는 카푸치노와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 거품은 주로 페미니즘 내지는 다른 걸그룹과는 차별되는 강인한 여성상인데, 신기하게도 JYP라는 거대기획사의 이름을 만나 빵이 누룩에 의해 부풀 듯 거침없이 커져 컵 밖으로 새어나올 지경이다. 벌써부터 Miss A 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진영의 에피소드를 들먹이는 천인공노할 국민우롤죄를 범함과 동시에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아이템 없이는 절대 호감으로 보일 수 없는 '깝'을 ㅡ 설마 여자라고 귀엽게 봐 줄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ㅡ 선보이는 등 망조를 보이고 있으니 통탄스러울 노릇이다.


Miss A 를 소개할 때 다음과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JYP는 '걸 그룹의 통념을 깨는 전혀 새로운 걸 그룹의 모습'이라고 했다. 나를 공분에 떨게 한 기사는 '나름 혁신적인 노래를 부르고, 외모보다는 실력을 강조하려 하는 Miss A'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주변 사람들 중 Miss A 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이 그룹을 그런 비스무레한 아우라를 가진 그룹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2NE1이 저돌적으로 남성에 대항하는 강한 여전사 이미지라면 Miss A 는 그보다는 좀 더 부드럽지만 할 말은 통쾌하게 하는 그룹? 뭐 이런 생각이다. 그들의 가사는 앞서도 말했지만 'shut off boy'라고 강하게 얘기하면서도 구체적이고도 논리적이게 '앞에선 한마디도 못하더니 뒤에선 내 얘길 안 좋게 해 어이가 없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Bad Girl Good Girl'를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Miss A 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얼마나 부화뇌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요즘 가수들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 상품들은 입력된 노래를 부르는 (혹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일 뿐, 그것이 그들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단지 돈벌이를 위한 그룹의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박지윤이 '성인식'이라는 매우 파격적인 앨범을 들고 나왔을 때 정말 박지윤이 이제 타락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JYP에 의해 이식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녀가 받았던 곡들 중 하나가 그 노래였을 뿐이며, 그녀는 앨범의 판매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한 것뿐이다. 하물며 요즘 같이 기획상품처럼 너무 많이 쏟아지는 걸 그룹들은 어떻겠는가. 그런데 이 그룹은 좀 심했다. 가사는 분명히 여성을 상품화하는 마초들을 향해 냉소에 가득 찬 시선과 더불어 큰 소리를 떵떵 치는 것 같은데 이 그룹 멤버들은 누가 보기에도 민망하게 다리를 드러내며 각선미를 자랑하는 것도 모자라 무대 바닥을 쓱 훑고 가슴과 엉덩이를 있는 힘껏 흔들고 있다. 역설을 이 노래에 담고 싶었던 것일까? 사회의 부조리를 가사와 무대의 불일치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 무대를 보면서 '쟤네들 좀 싸 보여'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라는 대목에서 뜨끔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노래 가사와 무대가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것을 정말 처음 봤다. 내가 Miss A 였다면 이 곡을 처음 받고 나서 이런 안무를 하라고 기획사에서 말했을 때 적잖은 혼란을 겪었을 것 같다. 물론 이 멤버들이 그렇게까지 고찰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 저 자리에서 열심히 신체를 흔들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저질스런 몸동작을 보노라면 감히 저들이 'shut off boy'를 외칠 수 있는 자격이나 되는지 매우 심란하기만 하다.


게다가 'Bad Girl Good Girl'은 진실된 여성의 마음을 담은 노래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사를 죽 읽어봤을 때 뭔가 통쾌한 것도 아니다. 주옥 같은 가사나 폐부를 찌르는 어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뭔가 페미니즘적인 그런 정신을 내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국 가사 전체에서 그나마 마초적 남성에게 따끔하게 하는 말은 또 진부하게 'shut off boy'밖에 없다. 특히 중간 브릿지 부분에서 '[날 감당] 할 수 있는 남잘 찾아요 진짜 남자를 찾아요'라는 가사에 이르면 '이 여자들이 강한 척은 하지만 사실 마초 같은 남자에게 반하겠구나'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게다가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가사의 주인공은 처음 보는 남자들 앞에서 이런 옷 이런 머리모양으로 춤을 추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트 죽순이 정도로밖에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것은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작사자가 묘사를 제대로 못 해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이다.


한 기사에서는 이 노래의 가사를 보고 '이제 사랑을 넘어서 여자들의 멋있는 척을 지나 남자들과 대중들을 비판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차라리 내가 정말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여성시대의 '여자들아 기죽지 마라 당당하게 외쳐라 남자들아 비켜라'하는 정도에서 이미 이 쪽 가사는 진일보할 만큼 진일보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여성시대의 이 노래 때문에 오히려 '과잉 진보 = 퇴보'라는 인식을 되려 여성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귀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 'Bad Girl Good Girl'의 가사는 퇴보 수준이다. 실상 읽어보면 가사를 읊조리는 여성이 주체라면 이 말을 듣도록 설정된 객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이며 ㅡ 이미 boy라고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ㅡ 가사의 결론은 '너 이 냄새 나는 마초야, 날 그렇지 보지 마. 난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남자를 만날 거니까'라는 이야기이지 않는가. 이미 날 받아줄 수 있는 남자를 운운하는 이상 페미니스트적 미학적 평가는 물 건너 갔다. 이러한 식의 생각은 갓 페미니즘에 입문한 초짜들이나 혹은 잘못된 페미니즘의 습득한 이른바 '꼴페미' 사고의 전형이다. 뭔가 강한 것 같고, 남성을 혼쭐내는 것 같지만 이상향과 사고는 마초 사회의 관습과 가치 그대로인 그런 것 말이다. 마치 대학 다닐 때에는 대기업의 해체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진보 혁명의 투사였다가 카투사를 다녀와서 삼성에 취직하는 그런 사람?


Miss A 는 자신들이 부풀린 가사의 분위기를 과도한 춤사위와 노출로 커버하면서 실력과 남성 비판과 같은 차별성의 미명아래 자신의 위치를 모호하게 규정시켜 놓았다. 'Bad Girl Good Girl'은 단적인 예이며 이 노래는 뭐가 있는 것 같아서 들어보면 정말 별거 없고 (진짜 나는 노래만 들어보면 너무 허전하고 재미가 없다. 비트도 뭔가 단순하고 건조한 것이 참…) 그나마 가사에서 뭔가 의미를 끄집어 내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지만 가사에서 풍기는 나이트 죽순이의 향기가 참으로 거북스럽기 그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Miss A는 과도한 노출과 별 볼일 없는 노래로 지탄받고 있는 다른 걸 그룹과 다른 점이 없다. 적어도 그들이 찍힌 앨범 화보를 보면 더 하면 더 했지 못한 부분은 없다. JYP 의 언론플레이와 포장이 대단해서 그런 건지, 이들은 벌써부터 거품을 안고 데뷔를 한 꼴이다. 이 정도 노래 실력이면 시크릿도 할 수 있고,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가 노래나 무대를 훑는 안무 면에서는 훨씬 일품이다. 가사? 차라리 가수 본인들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던 'NU ABO'의 '예를 들면 꿍디꿍디'가 더 진솔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Bad Girl Good Girl'에서 Miss A 가 극복해야 할 것은 사실 자신들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이중적인 시선이 아니라 자신들이 남자들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일 자신들이 진짜 보통 걸 그룹과 차별된 그룹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행보를 계속한다면 그 때에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라고 외친들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