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 내고 그 모든 불리한 상황을 묵묵히 헤쳐나가 마침내 찬란한 영광을 맞이하는 불운한 위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환상의 현현과 가장 가까운 예가 바로 피겨여왕 김연아였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위업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빼놓지 말아야 할 내러티브는 바로 '억울함'이었다.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에서 고생해야 했던 과거, 다른 선진국들 ㅡ 특히 일본 ㅡ 로부터 받아야했던 비이성적인 평가와 견제,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의 불화와 마음 고생 등등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억울함의 칼끝은 공교롭게도 '아무것도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향해 있다. 그래서 "김연아의 최대 약점은 국적"이라는 말이 이 모든 감동적인(?) 서사를 호소력있게, 그리고 자조적으로 압축해놓았다고 본다.


최근 며칠간 천재학생이라고 불리는 송유근 군의 논문 표절 시비와 관련해서 사람들이 찧어대는 입방아를 음미하다 보면 여전히 그러한 판타지가 유효하게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송 군은 대한민국 대표 천재 반열에 들기 위한 '억울함'의 스토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논문이 미국 천체물리학 저널(APJ)에서 철회되면서 그 빈 부분이 효과적으로 메워지고 말았다. 점잖게 말하면 안타까운 일이고, 날카롭게 말하자면 굴욕적인 일인데 '아무것도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지도교수와 국내 연구 환경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송 군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것을 보면 허탄한 한숨이 나온다. 마치 10년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때 벌어졌던 난리굿의 축소판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듯한 그런 헛웃음나는 상황 말이다. 다만 송 군과 황 박사에게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그 '억울함'을 이용해 먹으며 천재 명성을 유지하기엔 나이도 권력도 부족하다는 것, 반대로 후자는 국제적 명성과 언론 플레이, 그리고 홍위병(!)을 다루는 재주가 있어 천재 명성을 유지하는데 그 '억울함'을 간악하게 이용했다는 것이다.


UST와 지도교수의 최종 공식 입장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이 논문 표절 시비는 개인과 기관에 치명타를 먹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 일에 얽힌 다수의 사람들의 명예에 흠집이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각 가장 힘들어할 사람은 다름아닌 어린 송 군이다. 부디 다른 마음 먹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그런 '억울함'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자신의 탁월함이 자의에 의해 혹은 타의에 의해 드러나는 천재보다는 성실함과 우직함으로 자신의 탁월함이 부끄러움없이 드러나는 범재들이 이 땅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사회의 발전에 더 바람직할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