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번호 30번, 닫혀 있는 전자껍질 구조를 가진 원소. 기호는 Zn, 우리 말로는 '아연(亞鉛)'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일본인들이 번역한 과학 용어로, 원소 이름들 중 수은(水銀)과 더불어 일본제 한자어(日本製 漢字語)로서 대한화학회의 최종 승인을 받은 이름이다. 여기서 한자 접두사(接頭辭) '아(亞)-'는 어떤 것에 모자란, 혹은 버금가는 것을 일컬을 때 쓰는 것인데 영어의 'sub-'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대륙(大陸)에 비하면 조금 좁은 범위에 해당하는 아대륙(亞大陸)이란 명칭이 지리학에서 쓰이고, 온대(溫帶)과 열대(熱帶) 기후 사이에는 아열대(亞熱帶) 기후가 있다. 화학을 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잘 이해할텐데 보통 질산나트륨의 질산(窒酸)은 NO3- 이지만, 아질산나트륨의 아질산(亞窒酸)은 NO2- 이다. 즉, 산소를 포함하는 산의 음이온(oxyanion)의 경우 산소의 개수가 적을 때 '아(亞)-'를 붙인다. 이런 의미에서 살펴보자면, 아연의 연(鉛)은 납을 의미하므로 아연의 우리말 직역은 '버금납'이 된다.


일본인들이 왜 이런 명칭을 이 원소에 갖다 붙였을까? 일본어로 된 세계대백과사전은 납과 아연 모두 공기 중의 산소 및 이산화탄소와 반응하면서 표면에 피막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금속 고유의 광택을 잃어가는 모습이 비슷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기 중에서 납(Pb)은 산화납(PbO)과 탄산납(PbCO3)을, 아연(Zn)은 탄산아연(ZnCO3) 층을 만들게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염은 금속 화합물로서 광택을 띠지 않는다. 그런데 공기 중에서 광택을 잃는 금속은 금(Au)과 같은 웬만한 귀금속이 아닐 바에야 흔하디 흔하다. 알루미늄(Al) 역시 공기 중에서 치밀한 산화알루미늄(Al2O3) 피막을 형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알칼리 금속들은 공기에 노출되자마자 금세 산화되기에 공기와 수분이 차단된 기름이나 유기 용매 안에서 보관한다. 굳이 아연을 납에 비교할 이유가 있었을까?


잠시 지질학적인 얘기로 돌아가보면, 납과 아연은 산소(O)보다는 황(S)과 더 잘 결합하는 금속 원소로 골트슈미트(Goldschmidt) 분류에 따르면 칼코파일(chalcophile)에 해당한다. 따라서 납과 아연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광석은 각각 황화납(PbS)과 황화아연(ZnS)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황화납이 많이 함유된 주된 납 광석은 방연석(方鉛石, galena)이고 황화아연이 많이 포함된 주요 아연 광석은 섬아연석(閃亞鉛石, sphalerite)이다. 재미있게도 방연석이 있는 곳에는 항상 섬아연석이 있고 둘의 외양은 비슷하다. 그래서 보통 납 광산, 아연 광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납-아연 광산이 공존한다. 옛 즉 광산과 제련소 입장에서 납과 아연은 늘 같이 보는 금속이므로 아연의 특성을 납의 특성에 비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광산에서 채굴한 허다한 방연석과 섬아연석 덩어리들로부터 어떻게 납과 아연을 따로 얻어낸단 말인가? 현대 제련 산업에서는 납과 아연의 효과적인 분리를 위해 증류법을 이용하지만 과거에는 그와 같은 일이 쉽게 가능했으리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따라서 납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독일의 광부들은 섬아연석 없이 방연석만을 효율적으로 캐내는 것이 필수 해결 과제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외연이 비슷한 두 광석을 광산에서 어떻게 분별해낸단 말인가. 방연석을 캔답시고 엄청나게 고생했더니 사실은 섬아연석만 잔뜩 거둬들인 날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신나게 채굴했을 때는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광석으로부터 순수한 금속을 추출했더니 아연의 통상적인 뾰족한 금속 결정들이 용기 바닥에 석출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루의 수고를 모조리 망쳐놓았다는 악마의 저주와도 같았다. 광부들이 길길이 날뛰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때문에 당시 독일 광부들은 섬아연석을 일컬어 납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독일어로 '눈 먼'이라는 뜻의 '블렌데(Blende)'라고 불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뾰족한 모습을 말하는 톱니라는 뜻의 칭케(zinke)라는 단어를 합쳐 '칭크블렌데(Zinkblende)'라고 불렀다. 이것이 영어권으로 넘어오면서 섬아연석을 구성하는 ZnS의 독특한 결정 구조인 '징크 블렌드(zinc blende)'라는 관용명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나 놋쇠를 만들때부터 활용되었던 아연의 활용성은 현대에 들어 더욱 확장되었고 특히 반도체 성질을 띠는 산화아연(ZnO)의 기능성은 특히 주목을 받게 되었다. 더욱이 아연이 생체 내에서 필수적인 요소로서 다양한 신체 효소에 부가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는 것과 동시에, 납은 생물체 독성으로 인해 암을 일으키는 매우 유해한 중금속 물질로 널리 각인되었다. 그러니 과거 제련소에서 납을 얻으려다가 아연만 잔뜩 얻은 것을 그리 안타깝게 여겨야만 할 것도 아닌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