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는 소위 갑질이라는 것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신조어로서의 갑(甲)질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너무 과신하여 유세를 떨며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아마도 계약서에 등장하는 '갑'과 '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야구선수 이종범과 관련된 우스갯소리가 겹치면서 점차 '갑'이라는 이미지가 수퍼파워를 상징하는 말처럼 되었고 여기서 갑질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어 널리 쓰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주 상징적인 사건은 재작년에 나이 많은 대리점 주인에게 남양유업 제품 납품을 강요한 젊은 회사 직원이 폭언을 퍼부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대리점 주인들에게 동정을 쏟는 한편 비난의 화살을 남양유업으로 돌려 한때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대한항공의 젊은 재벌 3세의 기내 명령에 따른 '땅콩 회항'이 이런 갑질의 대표격으로 떠올라 국내외적으로 엄청나게 큰 비아냥과 비난을 사게 되었고, 요 며칠 사이에는 백화점의 모녀가 주차 요원들을 무릎 꿇게 한 사진이 공개되어 파장을 일으키는 중이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권세를 부리는 행동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은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서 내가 아무리 대등하게 맞선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내게 불이익이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남양유업의 경우, 직원의 강매를 받아주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물품을 사야 했으며, 대한항공의 경우 오너의 딸이 명령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거스르면 필시 위로부터의 보복이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이미 몇몇 부조리한 행태를 보이는 교수님들과 그 밑에서 고생하는 대학원생들의 비상식적인 처우는 뉴스로 잘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대학원생들도, 자신의 앞날을 맞바꿔가면서까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분투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학위도 소중하고, 그 학위를 딛고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개같은 시간만 참으면, 나중엔 웃을 수 있을 거야.' 라는 심정으로 이 시대의 '을'은 갑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다. 우리는 이 모든 상황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갑질을 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이고, 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라고 생각하며 '그러니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못됐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전부인 듯 싶다. 그런 갑을 관계에서 파생되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 자체는 부당하다고 여기면서도 그건 하릴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아예 단정짓고 이 사건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잘못된 패배주의'라고 꼬집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반 심리이기에, 또 투명한 사회구조의 변혁 없이는 도저히 개인이, 심지어 집단이라도 그것을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기에 입안에서 터져나오는 한심한 탄식과도 같은 것이다.


사건들을 자세히 보면 사람들은 남의 정의를 위해 집단으로 힘을 뭉쳐 행동하는 데 익숙한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누구나가 을의 위치에서 부당한 슬픔을 겪는 사람들이기에 주변에 그런 고통을 받는 사람이 등장하면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적어도 그 행동들 때문에 나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리는 없으니 사회 정의도 구현하고, 일종의 대리 만족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와 관련된 정의를 세우는 데는 이처럼 활발하게 행동할 수가 없다. 심지어 모든 것이 익명으로 처리된다 할지라도 선뜻 나서기가 힘들다. 사실 이것이 사람이 사는 사회다. 내부 고발에 의해 사회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한가지 문제가 더 추가되어 있어서 이런 정의를 세우는 것이 더 힘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초에 모든 이들이 평등한, 그런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남들보다 위에 서서 일은 덜해도 명예롭게 존경받을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라는 교육을 많이 받아왔고, 지금 그 목적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돈과 시간을 쏟아 가며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갑'의 위치는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고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한항공의 조 부사장을 욕하면서도 '그 나이에 그 정도 직위에 돈이면...' 하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웅얼거린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 이 모순적인 상하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고, '저 싸가지 없는 갑질하는 인간들을 갑의 위치에서 내리고 대신 다른 사람이... 그런데 내가 그 자리였으면 좋겠다.' 이런 심리가 대부분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심리가 한국 전반에 퍼져 있는 이상 '가해자가 된 피해자' 현상을 막을 수 없을 것인데, 이것은 군대에서도 흔히 잘 보인다는 그런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갑질을 하지 않는 갑이 내 위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어느 누구도 왜 갑이 저렇게 떡하니 내 위에 신처럼 군림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그 갑질이라는 게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사회 문제라는 것인지 전혀 고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갑질을 안하는 멋진 갑이 되겠노라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과는 글쎄.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일하는 사람 치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분노를 안 느껴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소위 '서민'이라고 자부하는 모두가 다 갑질하는 폭력적인 갑 그 자체다.


갑질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나라. 사실 따지고면 사람들은 '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갑질'에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래가지고서는 감정적인 배설과 비난, 그리고 보여주기식 미봉책만이 난무할 뿐 제대로 된 진단에 따르는 사회구조의 변화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미 모든 것 자체가 어그러져 있다는 인상을 버리기가 힘들다. 과연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인가? 아니면 샘을 내는 것인가? 그래서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 분노는 참으로 모순적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