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MS Access를 써 봐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서점에 달려가서 Access 기본 참고서를 하나 샀었다. 고심 끝에 고른 참고서는 예제도 풍부하고 실제 활용에 적절한 기능과 수월하게 구현하는 기법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그 참고서에 적혀 있던 수많은 글들 중 하나가 나를 사로잡았었다. 정확히 그 글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옮겨 담기에는 귀찮기도 하고 별 의미가 없으니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대략 표현하자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데이터(data)는 사실 쓸모가 없다. 그러나 그들을 어떠한 목적과 방향에 따라 정리하고 해석할 때 비로소 유의미한 정보(information)가 된다. Access는 바로 방대한 데이터의 묶음으로부터 정보를 도출해내는 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이다" 즉, 파편화된 데이터들이 가공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 실생활에 어떠한 가치도 지니지 않는 수치와 문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정보라는 것도 역시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만 하고 또 다른 무언가를 창출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어제 들었다. 데이터의 상위 개념이 정보라면 정보의 상위 개념은 무엇일까? 여기서 중요한 건 데이터를 단순히 모아놓은 것이 정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별된 데이터들이 정보를 만드는 것이지 않은가 ㅡ 이것은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화학자의 아주 기본적인 탐구 태도와도 같다. 그렇다면 정보들도 대충 쌓아둔다고 해서 그 상위 개념이 파생되지는 않을 터. 대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고 선별된 정보들로부터 파생되는 그 상위 계층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려던 찰나에 순식간에 내가 애용하는 위키백과(wikipedia)가 생각났다.
 
위키백과에는 수백만 개 이상의 표제어들이 등록되어 있고 각 페이지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즘 한창 '동서교회의 대분열' 26편의 내용을 쓰려고 모스크바 차르국의 첫 차르인 이반 4세에 대해 찾았다고 치자. 거기에는 이반 4세의 생애, 통치기간, 말년,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와 그가 남긴 유산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이반 4세의 정보에 대한 내용을 죽 읽다 보면 밑줄이 그어진 파란색 글씨가 종종 눈에 띠게 되는데 이것을 누르면 브라우저의 페이지는 그 글씨가 가리키는 표제어의 정보로 넘어가게 된다. 예를 들면 차르, 루스 차르국, 보리스 고두노프, 가짜 드미트리 등등. 이런 표제어의 정보를 읽다보면 나는 이반 4세 뿐 아니라 그 이전의 군주와 이후의 군주, 나아가 당시 모스크바 대공국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 여기서 가지를 더 쳐나가면 나는 러시아의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해 알게 된다. 결국 정보들의 연결이 앎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것이 바로 지식(knowledge)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단순한 숫자와 문자들로 기술되는 데이터에 비해 정보는 다루기가 매우 곤란한 대상인 듯 싶다. 어떤 정보는 짧은 단어들로 기술될 수도 있지만 어떤 정보는 몇 쪽이 넘는 분량의 거대한 글일 수도 있다. 오름차순, 내림차순, 가나다순, ABC순으로 쉽게 정렬하고 첫 숫자나 글자에 따라 쉽게 분류할 수 있는 데이터에 비해 이 정보라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정렬하고 분류해야 하는지 당장 막막하게 느껴질 뿐이다. 더구나 그 정렬이라는 것은 사실 데이터의 속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줄세우는 것이므로, 정보의 특성상 이런식으로 줄세운다고 해서 의미있는 연결이나 집합이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또 만일 활자로 기록되어 있는 정보라면, 이 정보에서 다른 정보로 넘어가고, 서로 연결 짓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다 보면 거대한 도서관에서 헤매는 나 자신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하지만 위키백과는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웹(Web)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정보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모든 페이지들은 서로 하이퍼링크(hyperlink)로 연결된 것이었다. 또 각 표제어들은 메타 태그(meta tag)를 통해 세분된 다양한 분류에 동시에 속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마우스로 클릭을 하며 여러 연결된 정보들을 찾아 나서고 검색 엔진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찾고 있지만, 이러한 활동을 활자 기반의 정보에 대입시킨다면 어떨까. 사실 우리는 지금 과거에 어느 누구도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고급 정보 체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모든 정보가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그 구조는 어려워 보이지만 차근차근히 밑줄 친 파란색 글씨들, 혹은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대면 손가락으로 변하는 그 부분들을 클릭하면서 다음 정보로 옮겨나가다 보면 금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연결된 정보로부터 어느 세대보다도 빠르고 쉽게 지식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나는 갑자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실 이 속담은 아무리 좋은 재료들이 있고 능력들이 있더라도 실제로 실을 이용해서 꿰지 않으면, 즉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속담은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의 연결을 통한 지식 창출이라는 상황에 전용되어 훌륭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요컨대 웹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세상에서는 서 말이 아닌 수십 억 말의 정보가 널려 있어도 만일 이들이 유기적으로 '꿰어져' 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즉, '꿰는 행동'보다 '꿰는 것'에 초점을 두면 이 속담은 정보학의 격언으로도 쓰일 법 하다는 말이다.
 
재미있게도 웹의 사전적 본뜻은 거미줄이다. 재료공학적 측면에서, 거미줄은 같은 질량의 철강보다도 더 강한 인장력을 견딜 수 있고, 훨씬 더 유연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양질의 정보가 널려 있는 이 세상에서 웹만큼 강하고 효과적으로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실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지식 사회의 근간이고 정보의 바다라 불리는 인터넷이 언제나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유지되는 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덕택에 우리는 보배를 언제나 손가락 끝과 눈 앞에 두고 살고 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