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앞둔 요즘. 아침 일찍 문을 열어보니 앞에 놓여있는 신문지가 퍽이나 두꺼워 보인다. 아. 추석맞이 광고전단지가 수북히 들어있었지만, 그 외에도 추석특집이라고 따로 찍어낸 신문지가 가운데 껴 있었다.

잠깐 넘겨보다가 눈에 익은 김정은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타이틀은 "눈부신 가을 햇살 맞으며 행복 나라로 함께 떠나요"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글이람? 알고 보니 '잘 살아보세'라는 영화에 출연했던 김정은과 인터뷰를 한 내용이 실려있었다.

제목이 좀 생뚱맞다 싶긴 했지만 아무튼 인터뷰를 읽어보니 제목은 눈에 안 들어오고 단지 김정은이 역시 '파리의 연인'에 나왔던 '강태영'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김정은 하면 딱 떠오르는 그 뭐랄까. 당차면서도 억세지는 않은 묘한 이미지. 성의있는 태도와 결심하는 듯한 그 표정이 익숙하다.

그런데 읽다보니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전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잖아요. '보면 만만하고 기분 좋잖아' 정도? 이것도 좋지만 이제 '믿음이 간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바랄게 없겠어요." 그는 흥행보다 좋은 평가에 더 목마르다.

순간 많은 것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김정은이 자기 자신을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라고 고백했다. 글쎄, 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인기를 쌓아올린 이가 쓰디쓴 입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소비되는' 스타.

사람이 소비된다는 것이 참 어색하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이것만큼 적절한 동사도 없을 것 같다. 사전적으로 '소비하다'라는 말은 돈이나 물건, 시간, 노력 등을 써서 없앤다는 뜻을 가지지만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재화를 소모한다는 경제적인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비한다는 표현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사서 먹어 치워버리는 것같이 느껴진다.

김정은은 자신이 소비되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파리의 연인'만 해도 그렇다. 거기에 나온 캐릭터와 환경 자체가 사실 비현실적인지라 김정은의 캐릭터가 직접 와닿거나 영속되는 뚜렷한 인상을 남긴 것이 아니다. 단지 그녀가 극중에서 만나는 다소 환상적(?)인 일들을 보며 그것 참 재미있네, 멋진걸.

그게 끝이다. 그렇게 '강태영'을 맛보면 남는 것은 없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나 인간미, 인생의 교훈을 이 캐릭터에게서 바란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단순히 '파리의 연인'이 조성모의 엔딩곡으로 끝나기 전까지 '강태영', 김정은의 이미지를 소비한 뒤 배부른 채 광고가 나오기 시작하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왔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욕망의 대상이 되어서 소모되는 예는 참 많이 있다. 안 그래도 오늘자 신문을 보니 대학가요제 이야기가 나와서 자세히 봤다. 최근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는 2006 대학가요제. 뛰어난 음악에도 불구하고 수상하지 못했다는 '뮤즈그레인'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기자는 최근 누리꾼들이 스타를 배출하는 일에 극성인 동시에 그 스타를 재빨리 소비해버리는 데 극성이라고 지적한다. 작년 2005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팀인 Ex의 보컬 이상미의 경우는 ㅡ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적절한 ㅡ 하나의 예로 소개된다. 이상미가 처음 나왔을 때 대중 매체와 인터넷은 난리였다. 하지만 1달도 안 돼 그녀의 상큼함과 발랄함은 소비되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뮤즈그레인'도 그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이번만은 다를 거라고, 이 경우는 특별하다고 그렇게 외쳐대도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게 뻔하다. 이렇게 너무 대중의 입에 오르락 거리면 십중팔구 소비되어 사라지기 십상이다. 어떤 영속하는 가치를 지닌 존재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물건'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얼짱들의 사진이 범람을 해도 보면 그냥 좋고 부러울 뿐 그냥 그 얼굴들은 뇌 속의 어느 창고에 그냥 쌓인 채 서서히 부패해 갈 뿐이다. 그게 좀 과해지면 성형에 대한 갈망이라는 부작용을 낳긴 하지만 아무튼 소비되어 버린 얼굴들은 내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 채 어디선가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이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10대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서 '쟤네들은 안개같은 존재야'라고 말씀하셨다. 그 '쟤네'의 범주는 꽤나 넓어서 우리가 현재의 톱스타라고 생각하는 가수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아니 1위를 다섯 번이나 연거푸 해서 골든 컵을 타는 가수가 무슨 안개?

하지만 어느새 새로운 가수들과 유행이 밀물처러 들이닥치고 스캔들과 지루한 법정공방 혹은 구속이 몇 번 '연예가중계'에서 이슈가 된 뒤에는 '좀 때 지난 가수'로 인식되다가도 언젠가는 정말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소비되는 스타의 반대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기억되는, 말로 표현하기는 좀 번잡하고 쑥쓰러운 조그마한 가치를 심어주는 존재가 아닐까. 볼 때만, 소비 중에만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보고 있지 않더라도, 소비가 끝나도 만족이 느껴지는 사람,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의 존재 가치가 물씬 느껴지는 사람 말이다.

자, 그러면 나에게 한번 물어보자. 물론 남들에게 소비될 만한 가치를 가지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 소비되고 마는 사람이 될 것인가. 세상에서 소비되어 없어지지 않는 흔적, 가치를 남기는 사람이 될 것인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