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초현대물리 시간에 선생님께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하시는 것이 바로 빛의 상보성(complementarity,相補性)이다. 빛이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에겐 식상한 과학 이야기가 되었을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빛은 입자요, 파동이다. 뉴턴에서부터 시작되는 그 논란의 역사가 보증하는 사실은 어떤 과학자의 실험에서는 빛은 분명 파동이기만 했는데, 어떤 과학자의 실험에서는 빛은 분명 입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영(Young)의 이중 슬릿 실험(double slit experiment)으로는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입자성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photoelectric effect)를 통해서는 빛이 파동일 리가 없다. 무조건 입자여야만 한다.

이렇듯 빛은 입자이며 파동인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신, 100% 입자이고, 또 100% 파동인데 다만 관찰하는 상황에 따라서 입자로서 보이기도 하고 파동으로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빛의 상보성이다.




오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를 처음 읽어보았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는 독일의 선제후(選帝侯,Kurfürst)였던 프리드리히 3세가 자기가 다스리는 영역의 교인들의 무지함을 깨우고자 신학자들로 하여금 만들도록 지시한 일종의 교리를 요약해 놓은 신앙고백을 문답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이 아주 대표적인 요리문답서 중 하나이고 오늘 보게 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역시 매우 유명하고 또 잘 쓰여진 것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참고가 되는 좋은 글이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시나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흔히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은혜' 등을 떠올리면 생각하는 그의 성품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죄 많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그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다. 우리가 죄에 빠져 허우적댈 때 구원의 손길을 내려주셨고 값없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 곧 은혜를 허락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므로 우리의 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신다. 성경에는 가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분노하고 미워하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하시며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극렬히 노하셔서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 남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게 하셨으며 불의한 자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항상 드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고 또 의로우신 분이라는 데 그럼 어느 정도 자비하시고 어느 정도 의로우시냐. 혹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자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의 은혜를 구하기에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공의에 비쳐 보면 우리가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할 죄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혹은 우리가 처벌받아 마땅할 죄를 지어도 그의 자비하심으로 거저 구속되는 것이 아닌가.




오늘 이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그 빛의 상보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하나님의 성품은 빛과 같을까. 하나님 역시 100% 자비하시고 100% 공의로우시다. 우리의 모든 삶의 흔적들은 자비하신 하나님에 비추어볼 때도 있고 공의로운 하나님에 비추어볼 때도 있다. 그래서 위의 고민은 사실 둘 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주 품에 안겨 은혜를 갈구하는 것도 옳은 자세이며, 죗값을 두려워하여 의로운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는 것도 맞는 일이다.

반면 어떤 일들은 반드시 100% 자비하신 하나님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있고 다른 일들은 반드시 100%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일은 100% 자비하신 하나님의 모습이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일은 100%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일 뿐이다. 마치 간섭 현상은 빛이 파동일 때에만, 광전 효과는 빛이 입자일 때에만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이런 하나님의 억지같은(?) 성품은 사실 빛의 상보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일이다. 100% A이면서 100% B인게 어디에 있느냐라고 극렬히 반발해 보아도 우리 세상에 가장 흔한 빛이 그렇다는데, 그 말에 수긍한다면 하물며 그 빛을 천지창조 첫날에 창조하신 하나님이에랴.

하나님은 빛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광자가 있으라(Let there be photons)', 혹은 '전자기파가 있으라(Let there be electromagnetic waves)'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직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이미 빛을 입자와 파동을 본격적으로 창조하기 이전에 먼저 창조하시어 자신의 성품을 닮은 상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도록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

아무튼 세상의 모든 과학적 지식과 논리를 뛰어넘는 하나님이시지만 이렇게 자신의 피조물의 성질로 초월적 존재의 모습을 일견 보여주시는 이 센스.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의 모습인 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을 놓고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할 때에는 조용히 현대물리학 책을 권해보면 될 것 같다. 거기서 통찰력을 발견해낸다면 질문은 스스로 해결될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