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2학기 때 수강했던 물리학 2는 '물리가 이런 것들도 다루는 학문이었지'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 과목이었다. 물리학 2가 다루는 내용은 정말 다양하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전자기학 부분을 다루지만 입자, 고체, 양자, 천체물리학도 이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기전력' 이야기가 한창 수업 시간을 수놓고 있을 때였다. 물리학 2 시간은 수업 분위기와 선생님의 강의 특성상 상당히 졸음이 쏟아지는 시간이지만 아무튼 그 역경(?)을 이겨내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주변에서 물리학에 관련된 예를 곧잘 드시는 우리 유 교수님이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도 수업 시간에는 마이크를 이렇게 사용하는데, 이 마이크에는 건전지 두 개가 들어갑니다. 수업 중에는 이렇게 사용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이걸 열어서 건전지 하나를 거꾸로 놓고 다시 닫아요. 그러면 방전이 되지 않고 기전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거든요. 이게 바로 역기전력이 사용되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건전지 두개를 넣는 경우 건전지의 연결을 [(+)(-)~(+)(-)] 이렇게 놓아야 마이크는 작동된다. 하지만 마이크를 꺼 놓았을 때에는 건전지를 하나 꺼내서 반대로 놓는다는, 즉 [(-)(+)~(+)(-)] 이렇게 놓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듯 기전력이 반대로 걸리거나 크게 못미치게 걸리면 전기기구는 작동되지 않는다.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면 이 방법을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모르던 신기하고 상큼한 상식이었다. 건전지 하나를 단순히 거꾸로 끼우는 것을 통해 기전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니.

흔히 전기 기구의 전원을 껐다 하더라도 코드는 확실이 뽑아야 전기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보통 건전지를 끼워넣어 작동시키는 전기 기구들도 설사 전원을 꺼놓고 있더라도 건전지는 방전이 되어 기전력이 현저하게 감소한다. 심지어는 개봉도 안 한 건전지도 오래 그 상태로 놔두면 어느새 헌 건전지가 된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전류가 흐르려면 일종의 전기적 퍼텐셜 에너지 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유지시키는 힘이 기전력이다. 쉽게 말하면 기전력의 크기는 산 꼭대기에서 흐르는 물이 처음 출발하는 위치로, 높은 산에 있을수록 물은 맹렬하게 산 아래로 흐르게 된다. 우리가 전원을 끄는 것은 단순히 산에서 흐르는 물의 길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누수' 현상은 막을 수 없는 것!

전지를 거꾸로 끼우는 것은 아예 이 기전력을, 곧 산의 높이를 0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다. 1.5V 건전지가 두 개 직렬로 연결되면 3.0V가 되지만 서로 거꾸로 맞닿아 있다면 역기전력에 의해 0V가 되고 말고 이 상황에서는 전기적 퍼텐셜 에너지 차이가 부재하므로 전류는 흐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는 '누수' 현상을 일으킬 물 자체가 흐르지 않으니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다보면 내 큰 꿈과 의욕, 투지가 어느 새 조금씩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새 우리는 이렇다 할 것을 이룬 것 같지도 않은데, 전원은 꺼져 있어서 뭔가 대단한 작동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 몸에서 그러한 것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방전되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며 우리는 스스로 놀고 쉬며 자신을 위로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우리가 참된 위안과 휴식을 이 세상 속에서는 찾기는 참 힘든 것 같다. 때문에 이러한 방전으로 큰 슬픔과 걱정근심을 다 겪은 뒤에 회복시키고 다시 방전되었다가 돌아오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힘들어짐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최고의 처방은 어떤 충전책을 찾느냐보다는 현재 이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 몸의 '방전'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전을 막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이 물리학의 설명이다. 정신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새롭게 먹으라. 조금만 태도를 바꾸어 생각하라. 그리하면 네 모든 것을 처음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을 테니까. 새학기 첫날 학교에 들어섰을 때, 대학 입학일에 교문을 지나갈 그 때, 내가 처음으로 원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을 때, 그 때 그대로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