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일본어에는 서구권 언어에서는 찾기 힘든 언어 형태가 존재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높임말'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일본에서는 '켄쥬고(겸양어)'라고 불리는 것이다. 한국어의 경우 흔히 선어말어미 '-시-'를 넣거나 단어를 높임말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고치거나 조사를 변경하는 것으로 높임을 표현한다. 이러한 높임말 체계의 존재는 많은 서구권 사람들을 애먹이는 것으로, 왜 스페인어의 명사는 남성명사, 여성명사로 나눠져있을까 하는 한국인의 불만과 사실 다를 바 없다.

높임말에는 사회의 위계질서와 연장자에 대한 공경이 중시되던 동아시아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한다. 물론 높임말 체계가 없다고 해서 그 나라와 민족 문화는 공경심 같은 건 애초에 없었던 미개하고 천박한 존재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의 문화가 '장유유서'와 같은 덕목에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좀 더 높은 가치를 책정했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높임말 과잉사용으로 인해 곳곳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홈쇼핑 호스트와 백화점 판매원들의 입을 관찰하면 김각한 높임말 남용의 실태를 가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님'을 남발한다던지, 손님이 아닌 물건을 높이는 말(예를 들면 이거 원단이 정말 좋으시거든요~)을 한다던지, '-시-'를 듣기 거북할 정도(여기 보이시는 것들을 전부 보내실 수 있으시고요~) 많이 쓰기도 한다. 이런 판매원을 앞에 둔 채 쇼핑을 하다보면 왠지 내가 많은 높임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어딘지 모를 어색함과 께름칙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이런 불필요한 존댓말이 다른 곳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너무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후배들, 혹은 나이 어린 사람들의 입에서 들려오는 존댓말들 말이다.

존댓말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존대말이라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와 관련된 사람, 혹은 나를 알게 된 사람이라면 나보다 나이가 낮은 사람이더라도 기왕이면 존댓말 말고 반말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도대체 내가 그들보다 엄청 큰 어르신도 아닌데 그런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은 나와 다를 수 있고 나는 그것을 존중하고 또 맞춰가야 하며 사실 내 생각이 이 땅에서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나는 못 해도 내 아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길 희망하는 것이다. 다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가 한두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우리의 자연적인 기질이 그러해서가 아니라 응당 그러해야 하는 것 같다고 학교에서 배워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동아리인데도, 같은 교회에 다니는데도, 같이 짧은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생각 없이' 존대말을 쓰고 앉아 있다. 즉, 진실로 존대의 의미로서 존댓말을 쓰는 게 아니라 나이 더 먹은 사람에게는 응당 존댓말을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게 더 싫다. 빈껍데기 뿐인 존댓말은 오히려 부담과 거리감만 채워져 내게 돌아올 뿐이다.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친하고 가까운 상대라면 나이 고하에 관계없이 반말을 쓸 것을 권하고 있긴 하다.

물론 이 사람이 날 잘 아느냐, 나와 친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상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나서부터 반말을 해도 별 상관이 없는 반면,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나서부터 곧 반말을 쓰면 '얘 왜 이래?'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이따금씩 들더라도 어쨌든 내 고고한 기준으로 '반말이 더 낫다'라고 해 놓았기 때문에, 즉 나는 반말을 선호한다고 스스로를 정의했기 때문에, 누구나가 시도하는 반말을 다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반말을 한다는 것과 무례하다는 것은 동치가 아니지 않은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스페인에 있을 때 교수님들이 제발 자신을 Usted(당신)이 아닌 tu(너)라고 불러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무래도 교수님을 tu라고 부르기엔 부담스러워서 항상 Usted라고 부르곤 했는데 ㅡ 20여년의 언어습관이 단 며칠만에 바뀌지 않는 건 당연했다. ㅡ 아마 교수님들의 마음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동일한 게 아닌가 싶다. (아니, 더 앞서나가 있다. 적어도 나는 나이 3~40대가 되어서 학생들 앞에 선다면 학생들에게서는 당연히 존대말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한두살 차이로 나이를 따지고 존대와 하대가 엄격해야 할 곳은 강력한 관료제 사회일 뿐,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은 그런 것이 반드시 엄해야 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유연하고 쉽게 말을 풀어가는 것이 더 좋은데, 도대체 한두살 차이가 뭐길래, 한두살 나이 먹은 것을 가지고 뭐 더 잘난 것도 없는데 그런 불필요한 존대말을 들어야 하는지 나는 솔직히 좀 의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행태(혹은 구태)를 벗어버리는 걸 상당히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한 살 차이도 매우 엄격하게 다가오니까. 그런데 내가 감히 말하노니 그런 거 따져봐야 아무것도 소용없다, 우리가 서로 볼 날이 많으면 대체 얼마나 많기에, 우리 서로 만날 날이 우리 평생에 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한 것을, 무엇하러 존댓말이라는 껍데기로 포장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고 서로 버벅거리고 있나, 그러니 반말을 쓰라, 반말을 쓰라니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