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에서 뒹굴거리다가 요즘 즐겨보는 게 만화 채널 '부메랑'과 뉴스 채널 'BBC', 그리고 역사 채널 '히스토리 채널'이다. 특별히 히스토리 채널은 한국에 있을 때에도 가끔 즐겨 보긴 했지만, 이 곳에서는 그 재미가 배가된다. 제대로 주의를 기울여 나레이션을 듣지 않으면 도대체 TV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길이 없으므로 비장하게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 TV앞에 앉아 있으면 마치 배수진을 친 병사처럼 일종의 스릴감과 공포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러한 프로그램 중 그나마 나의 짐을 덜어주는 것은 제 2외국어 화자의 인터뷰이다. 이들의 인터뷰는 영어자막이 밑에 나와서 아무래도 훨씬 편하다. 이번에 본 'Das Drama von Dresden(드레스덴 드라마)'도 그러한 경우였다. 독일에서 제자된 이 역사 프로그램은 독일어로 나오는 나레이션을 영어로 새로 더빙하고, 독일인 인터뷰 내용은 영어 자막으로 처리되어 방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다루는 내용은 제 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의 2월, 드레스덴이라는 독일의 한 도시에 가해진 연합국의 공습에 대한 이야기였다.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역사상 벌어졌던 많은 전쟁,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내용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많이 방영하는데, 이번 프로그램은 특별히 추축국(the Axis)의 국민들의 입장에서 겪은 전쟁의 참화에 대한 이야기라서 매우 특별했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경과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아는 바가 없지만, 1945년이면 이미 추축국이 열세로 돌아서 힘겹게 연합국(the Allies)이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맨하탄 프로젝트로 원자탄을 비롯한 각종 신무기가 개발되고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1945년 2월의 어느날, 연합국이 드레스덴이라는 독일의 한 도시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게 된다. 자정을 전후하여 2번, 그리고 오전에 1번 이렇게 총 3번의 공중 폭격을 가한다.

프로그램은 '폭격 이전 - 1차 폭격 - 2차 폭격 - 해가 뜬 뒤의 참상 - 3차 폭격 - 그 후'의 순서로 드레스덴 시민의 모습을 조명한다. 당시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재연, 당시 사진과 영상이 보는 이에게 전쟁의 참상을 낱낱이 고한다. 드레스덴에는 수백 개의 폭탄과 방화탄이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도시 전체에 붙은 대형 화재로 인해 산소 부족으로 인한 질식하여 죽거나, 화재로 인해 도시 중심부로 휘몰아치는 거대한 소용돌이 바람으로 인해 불길로 빨려들어가 죽기도 했다. 일부 폭탄은 아세톤을 이용한 시간지연폭탄이어서 대규모 폭격이 끝난 뒤 안심했던 사람들이 뒤늦게 갑자기 터진 폭탄에 몰살당하기도 했다. 온 천지를 무섭게 진동시키는 폭격 소리가 요란하게 틀어막은 귓전을 때릴 때마다 대피소에서 공포에 떠는 시민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존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은 극도의 공포감과 긴장으로 인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고. 살아난 사람들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의 놀라운 헌신과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에서 무섭게 떨어지던 연합국의 폭탄들을 보고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착각할 정도였고, 불바다가 된 드레스덴 시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특별히 아침에 벌어진 3차 폭격은 폭격을 위해 출격했던 연합국 조종사들까지도 비극적으로 기억할 만큼 충격적이었는데 드레스덴 시에 흐르는 알바 강 전역이 피난민들의 무덤으로 변해 시체가 나뒹구는 죽음의 장소로 변했으며 모든 것이 훤히 보이는 그 아침에 벌어진 폭격은 비극 그 자체였다고. 드레스덴은 쑥대밭이 되었고 건물의 잔해와 시체로 뒤범벅이 되었다. 나치 정부는 드레스덴 폭격에 의한 사망자 수를 처음에 300,000명이라고 발표했다가 차츰씩 축소시켜 30,000명으로 최종 발표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최소한 드레스덴 시민의 절반이 숨졌을 것이라며 사망자는 500,000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당시 드레스덴의 건물에 있던 유리가 다 녹아내릴 정도로 시내의 온도가 매우 높았으므로 시신이 온전하게 남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렇듯 엄청난 인명피해로 인해 도시 전체에 사체로 인한 전염병 위험이 대두될 정도였다고 한다.

드레스덴만이 공중 폭격의 목표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군은 태평양에서 우위를 점해 일본을 압박하면서 도쿄에 전략 폭격을 심히 가해 도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독일 또한 V2 미사일을 쏘아 연합국의 도시를 공격했다. 브뤼셀에 떨어진 미사일로 인해 수백명이 단숨에 목숨을 잃었고, 런던의 시민들은 독일에서 보낸 공포의 미사일로 인해 생존의 위협 아래 하루하루 살아야 했다. 생존자들 역시 당시 독일이 런던을 폭격했던 것을 상기하며 더 이상 연합국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분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전쟁의 참화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이젠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지요. 우리는 모두 용서하고 이해할 수가 있어요'라는 구호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심히 많겠지만. 폐허가 된 이 날 드레스덴의 사진은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는 폭격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잔혹하고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이러한 잔혹한 공중 폭격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십수 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미 사망자는 800명에 육박하고 부상자가 3,000명을 넘어섰다. 예상대로라면 사망자 수가 1.000명을 넘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전선이 확대되어 레바논 헤즈볼라와 일전을 치르지 않는 것만 해도 큰 다행일 정도이다. 가자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가 드레스덴의 시민들이 겪었던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스라엘은 충분히 가자 지구를 진멸시킬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요즘의 무기는 이전 것보다 더 진보하여 훨씬 정교하고 파괴적이지 않은가. 제발, 다시는 63년 전의 공포의 기억이 중동에서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됨'에 큰 상처를 남기는 비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