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복수전공하는 형이 하루는 내게 이렇게 얘기했다. 학부 선형대수학 통년 과목 교과서로 쓰이는 '선형대수와 군' 책을 너무 좋아해서 서문을 외울 정도인데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있다고.

"수학자들이 이렇게 존재성과 유일성에 집착하는 것을 알게 되면 신학자들도 놀랄 것이다."

뭔가 확 와닿는 말이었다. 존재성과 유일성은 수학 공부를 하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다. 물론 물리학을 공부할 때에도 어떤 물리 방정식의 해가 과연 존재하는지 그리고 유일한지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물리학의 경우는 수학과 다르다. 이유인즉 물리학자들이 그런 것들을 다룰 필요가 없이 수학자들이 너무나도 친절히 다 해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론과학자를 제외한 과학자들은 존재성과 유일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해가 존재하느냐? 존재한다면 유일하느냐?' 를 따지는 것은 이론을 추구하는 과학자, 그 중에 수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내가 배운 수학 내용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미분방정식의 해의 존재성과 유일성을 따지는 Picard Iteration에 관한 이야기인데 방정식을 푸는 '스킬'을 제시하는 미분방정식 수업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섹션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실 그 형은 미분방정식 수업이 정말 재미없다고 얘기했다. 여기서부터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걸 '조금 이용하는 것만 흥미있는 사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나같은 사람들은 사실 존재성과 유일성에 대한 논의의 가치를 잘 모르는 편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뻔히 있는 것은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논리에서 기인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물리학에서 해를 구할 때에 해가 있다는 것은 사실상의 전제이다. 만일 해가 없을 수도 있는 방정식을 푸는 물리학이라면 정말 암울하기 그지 없으니까. 게다가 우리가 얻은 해가 유일하다는 것은 우리의 방정식 풀이를 보증해주는 것으로, 유일성에 대한 고찰은 매우 환영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귀찮고 또 다른 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슈뢰딩거 방정식을 푸는데 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따진다면 원자, 혹은 분자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구한 해가 유일한 것인지에 대해 따진다면 우리는 평행 우주 가설처럼 모든 경우에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우주 중 어느 하나에 몸담게 될텐데, 그 경우의 수는 가히 무한대이다. 떄문에 학부 수준에서 슈뢰딩거 방정식을 논할 때에는 존재성과 유일성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수학자들이 본다면 매우 이상한 행태라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심지어 dimension(차원)이라는 정의가 수립되었을 때 거기에 대해서도 존재성과 유일성에 대한 잣대를 들이밀어 증명해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니 말이다. 이에 반해, 우리들은 정의를 내리면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아무도 오비탈을 정의해 놓고 존재성과 유일성을 따지듯 덤벼들지 않는다. 정의하면 곧 존재하는 것인 게 우리들의 지배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그 형은, 자연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것이라면 수학자들은 '의심'을 품는 거라고 했다. 자연과학자들이 세운 '이론'이라는 것은 현상을 잘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실 절대적인 진리는 올바르게 행한 실험 관찰 결과이다. 그러나 수학자들이 세운 '이론'이라는 것은 현상을 잘 설명하는 것 그 이상으로 100% 완전무결한 진리여야 한다. 이쯤되면 도대체 수학이 왜 자연과학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심각한 의문을 제시할 만하다.

진정 수학자들이 품는 의심과 엄밀한 사고 방식의 적용은 철학자와 신학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사실 (기독교) 신학자들도 신의 존재성과 신의 유일성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매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물론 수학자가 신학을 열렬히 연구한다면 모두들 그 엄밀한 언어의 선택과 시쳇말로 '얄짤 없는' 결론 도출의 과정에 다들 고개를 저으며 질려할런지도 모른다.

나야 이제 수학의 엄밀한 철벽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지만 그 엄밀함의 세계에 매력을 느껴 그 문을 나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뭐든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니, 아마도 수학의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부터 새롭게 정의한 뒤에 자신의 존재성과 유일성을 증명하려 들지 않을까? 음, 그건 다분히 철학적인데. 그래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가 이런말을 했던 걸까?

"Cogit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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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