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는 매우 유명한 20세기 피아노,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특히 그가 연주한 바흐(J.S.Bach)의 골드베르크 협주곡은 명반으로 자주 손꼽힌다. 글렌 굴드는 놀라운 그의 연주 실력과 더불어 그가 벌인 기행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여름에도 겨울날 외출할 때처럼 목도리와 두꺼운 옷으로 무장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항상 그 복장을 포기하지 않았고 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나게 두꺼운 장갑을 항상 끼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기행(?) 중 하나는 연주 중에 끊임없이 입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거기서 소리를 낸다. 허밍을 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가끔 글렌 굴드의 연주를 듣다 보면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연주자 자신이 내는 허밍소리이다.

오랜만에 그가 연주한 The Well-Tempered Clavier 연주곡을 유튜브에서 감상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댓글에 글렌 굴드의 허밍을 지적하고 나선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논의가 많이 확장된 편은 아니었지만 이 사람은 글렌 굴드의 허밍은 청자를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고 의아해하고 있었다.

사실 글렌 굴드의 허밍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는 어쩌면 음악미학적 토론이 필요할런지 모르겠다. 과연 '연주'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미부터 재정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연주를 '작곡가가 악보에 의도대로 표기한 그대로를 악기의 음색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악보에 기록된 것을 연주자가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연주자의 연주를 듣는 청자들의 반응과 해석'이 실제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작곡가의 의도대로 음악을 완벽하게 정확히 표현하는 건 컴퓨터가 대신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Midi 파일로 저장된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Perfect!'라고 외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듣는 사람들은 연주자들이 그 곡을 연주할 때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표현해내는 지에 더 관심을 쏟는다. 연주자들의 미묘한 음감의 표현은 컴퓨터 midi 파일의 '칼로 자른 듯한' 음악이 도달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과연 청자가 '어느 정도까지'를 연주자들의 표현의 영역이라고 인정해 줄 것인가이다.

글렌 굴드의 허밍은 바로 '연주자의 자유로운 표현의 영역'과 '올바른 감상을 방해하는 잡스런 요소들의 영역'의 경계에서 사람들에게 논의의 대상이 될 만하다. 과연 글렌 굴드의 허밍은 연주의 일부분일까, 아니면 레코딩 시 분명히 제거시켜야 할 소음일까. 물론 글렌 굴드의 이름은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그의 허밍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거장은 달라!'라고 외치며 그를 반겨줄지라도, 만일 오늘 보러 가게 될 음악회 연주자들이 아예 대놓고 쇼팽 연주를 하면서 스캣을 하고 있다면? (오, 생각만 해도 이건 무섭긴 하다.)

물론 글렌 굴드는 내 이런 말을 듣지도 못할 테니까 언제까지고 허밍을 하면서 연주를 하겠지. 아마 그도 사람이니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철학적, 미학적 고뇌를 거쳤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허밍을 끝까지 옹호했겠지. 사실 그의 허밍이 처음 들을 때부터 매력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순히 글렌 굴드를 비하하는 것은 '나 듣기 싫으니 닥쳐!'라고 외치는 고집불통이자 무지한 무뢰배와 다를게 없어 보인다. 올바른 음악 감상자라면 적어도 '비상식적인' 혹은 '상식을 깨는' 글렌 굴드의 허밍을 해석해 보고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