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자기표절의 유혹을 넘어서]
Date 2008.11.23


자기표절(self-plagiarism)이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표절행위를 일컫는다. 우리는 흔희 표절이라고 하면 남의 것을 베끼는 행위를 떠올리기 때문에 표절의 대상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말을 들으면 그런 것도 있나 싶어 의아해 한다. 그러나 자기표절 행위의 수준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이며 연구자 사회 뿐 아니라 학생사회에서도 광범위하게 일어나 그 병폐가 심각하다고 한다.

최근 나도 자기표절의 유혹에 휘말렸다. 나노화학이랑 응용물리 두 과목에서 각자 주제를 잡아 발표 자료를 만들어 약 15분 정도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다. 나노화학의 기준이 다소 엄격해서 나노화학의 발표 자료 제작이 훨씬 빨라졌고 더 집중력있게 진행된 상태였다. 그에 반애 응용물리같은 경우는 주제만 대충 잡았을 뿐 진행상황은 지지부진이었다. 그래서였나, 그냥 나노화학에서 발표한 내용을 응용물리에서 발표하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왜냐하면 사실 나노화학에서 발표하는 주제는 오히려 응용물리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양심이 내게 얘기하는 바에 따르면 그런 행위는 비열했다. 왠지 꺼림칙했고 썩 도덕적이지 못한 방법인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에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영 그런 행동은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남들도 나처럼 생각하는 걸까? 나만 너무 소심하게, 혹은 과도하게 생각해서 남들은 다 함직한 그런 일을 스스로 폐기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러한 행동은 학생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전 학기에 썼던 리포트를 마치 새로 쓴 리포트인 양 말끔히 정리해서 제출한다든지, 동일한 주제로 다른 과목에 제출한다든지. 그렇게 하는 사람의 눈에서는 죄의식이나 자책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내 양심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그러한 행동은 바로 '자기표절'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올려준 대학신문 기사를 보고 교수님들도 이런 사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응용물리 교수님께 주제를 한 3개 정도 이야기했는데 그 중에 나노화학 주제 말고 다른 주제를 택해서 발표해야겠다.

이러한 자기표절 행태가 학부생 때부터 자리잡기 시작하면 나중에 커서는 논문표절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는데 하물며 배움의 세 살인 학부생 때 아무렇지도 않게 해 왔던 부정행위들을 연구자가 되어서 안 할리 만무하다. 주변의 학생들 중에는 '에이~ 뭐하러 그렇게 골치 아프게 생각하냐, 쉽게 가자'라든지 '어차피 남들도 다 하는데 왜 나만 죄책감을 늒야하나?' 혹은 '원래 다 그렇게 슬쩍슬쩍 하면서 살아가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나는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물론 내 삶이 언제나 양심에 떳떳해왔느냐고 내게 누군가가 묻는다면 고개를 떨구는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자기표절만큼은 내 속에서 제해버리자, 그런 생각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