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산업도로를 따라 호계동 쪽에서 우리 집 쪽으로 올라오다보면 특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분명 여느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가판대인데 주변에 차들이 즐비하고 심지어 정차를 안내하기 위해 안내봉을 분주히 흔드는 아저씨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좁은 골목에 있는 맛집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랄까? 사람들은 그렇게 가까스로 정차한 차에서 내리고, 길게 줄을 선다. 가판대에서 뭘 사기 위해 이리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고등학교 친구 말로는 로또 복권을 사기 위해서란다.

아세모 토론을 위해 한 주에 한 번씩 우리가 모였을 때, 다룬 주제 중 하나가 '복권의 유효성'이었다. 사실 부끄럽게도, 복권이 공익기금 마련을 위한 정부의 유용한 시책 중 하나라는 사실을 나는 미처 몰랐었다. 복권으로 조성된 기금 중 일부는 당첨금으로 쓰이지만 대부분 다양한 정부 사업을 위한 돈으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복권이 그런 용도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이 내겐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따지고보면 누구에게나 복권은 '대박'의 상징이고, 인생을 갈아 엎는 황금열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그 때는 한창 '로또(lotto)'라는 신종 대박 복권이 한층 기승을 부릴 때였다. 로또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생기고 너도 나도 로또로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거는 그런 상황이었다.

가판대 옆에 걸린 현수막에는 여기에서 로또 1등이 3명이나 나왔다고 쓰여 있었다. 실제로 우리가 한창 토론에 열을 올릴 그 때 당시, 가판대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로또 1등 당첨된 사람이 있었는데 이내 집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떴다'고 했다. 1등 당첨자는 세금을 제한다 해도 수십억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 로또 1등 당첨자 수가 1년에 그리 많지도 않은데, 무려 3명이나 같은 장소, 그것도 일견 영세해 보이는 가판대에서 당첨이 되었다고 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히 쏠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토요일이 되면 로또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의 수는 훨씬 많아지는데, 다들 로또 명당의 기를 받기 위해서인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복권을 사고 번호를 찍고 있다.

지금이야 예전에 비해 로또 열풍은 사그라들긴 했지만 정말 그 때는 장난이 아니었다. 로또 관련된 책들과 비급이 서점과 인터넷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로또 관련 무작위 숫자 뽑기 놀이기구나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로또 숫자를 위해 점술가나 용한 무당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로또에서 잘 나오는 번호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고, 경수산업도로 옆 가판대처럼 로또 명당을 잘 잡으면 로또 당첨의 행운이 찾아온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기분상' 로또 명당을 찾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보면 과거의 당첨 역사가 현재 나의 당첨 확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서로 '완전 독립적 관계'인데다가 사실 따지고 보면 복권 종이를 판매하는 것과 복권이 당첨되는 것은 완벽한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소용 없는 짓이긴 하다. 마치 이런 것과 같은 것이다. 부산에 사는 친구가 모 문방구에서 산 A사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시험을 쳤더니 대박이 났다. 그래서 나도 부산에 있는 그 문방구를 찾아 A사 컴퓨터용 사인펜을 사서 시험을 치는 것이다.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면 전혀 무관한 일임에도 정성을 다해 직접 찾아와 수십분 씩 기다리는 그 고생을 하면서 고작 숫자 다섯 개를 찍는 것에 불과하는 그 종이 조각을 살까? 생각해 보면 아무리 과학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그 미신적이고 비이성적인 것들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사실 기분상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그만'이니까 사람들도 거기에 넘어가 주면서도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우리 주변에 그런 미신 아닌 미신이 많지 않은가.

그래도 좀 씁쓸한 건, 모두들 거금의 복권 당첨금을 쫓고 있을 뿐이라는 것. 얼마나 그것을 원하면 수백만 분의 1의 확률에서 0을 더하려고 그런 '무해하지만 동시에 무익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사람들은 당신들의 행동이 당첨 확률을 높여 줄 것이라는 믿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겠지.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대인의 모습이란 말인가! 좀 너스레를 떨며 거창하게 말해 보자면 복권을 사기 위해 가판대에 늘어선 줄은 이 시대의 슬픈 황금색 초상인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