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십일조를 내려고 통장에서 돈을 뽑다가 기겁을 할 뻔했다. 돈을 뽑고 나니 모니터에 보이는 내 통장 잔액이 18원. 18원이라니. 내 지금까지 지내 오면서 통장 잔액에 두 자릿수가 찍힌 것은 처음 봤다. 이제 현금을 쓰는 것은 사치이다. 무조건 카드를 긁어야만 한다! 십일조를 내지 않았다면 다음 월급 때까지는 manage to survive할 수 있을 텐데, 이미 현금은 뽑았고, 헌금 봉투에 넣어져 헌금함에 들어갔다. 게임 종료.

십일조를 힐난하는 사람들 중에는 '십일조는 교회가 돈을 벌 명목으로 좋게 포장한 것으로 결국 교인에게 돈을 갖다 바치라고 삥 뜯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는 헌금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일개 무식한 자의 헛된 혀놀림에 불과하다. 세상 어떤 종교조직, 봉사조직이 이러한 기부와 헌납 없이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나마 세상적인 봉사조직은 부분적으로 영리 사업을 통해 수입원을 마련할 수 있지만, 종교조직은 불가능하다. 과거 우리 나라나 유럽에는 종교조직마다 소유지가 존재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했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절과 교회의 수입은 성직자들의 (속된 말로) 발품팔이를 제외하곤 모두 신도들의 자발적인 기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자발적인 기부에 종교적인 색채를 가미해 교리적으로 타당성을 부여한 것이 결국 시주고, 헌금이 아니겠나?

십일조는 그 중에서 매우 특별한 것이다. 십일조가 최초로 성서에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28장 22절로, 야곱이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해 도망칠 때 벧엘에서 서원한 것에서 기원한다. 그는 도망길 중에 돌을 베게 삼아 누워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서 자기 소유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맹세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십분의 일을 드린다는 내용이 아니다 ㅡ 사람들이 무조건 십일조를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야곱이 그 전에 한 말을 제대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맹세 중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라고 했다.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십분의 일 앞뒤에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1/10이라는 수치에 대한 아쉬움에 사로잡혀서임이 분명하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라는 고백이다. 십일조를 아까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돈'이 나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소유'라는 것이 사실상 아무것도 없음을 시인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내가 잠시 청지기와 같이 맡아 쓰는 것에 불과하고, 결국 이것은 주님의 뜻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불행해진 이유는 결국 개인의 탐욕과 무분별한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결국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쉽게 이러한 생각을 구체화하여 행동으로 옮길 수 있나? 가장 쉽고도 강력한 것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일부를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부를 많이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일수록 재물욕이 덜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결국 교회에서도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진 모든 것을 드리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기에 성경에서는 10%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불교나 이슬람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불교의 '공수래 공수거'는 결국 법정 스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무소유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신자의 다섯 가지 기둥 중 마지막 기둥인 자카트(zakat)는 자기 소유이 일부(소유물의 종류에 따라 2.5%~10%의 차등이 있음)를 가난한 자와 이슬람교의 확장을 위해 의무적으로 쓸 것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들 개념은 기독교의 십일조와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어쨌든 자신의 소유 개념을 버리라는 의미에서는 비슷한 가르침이다.)

두번째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헌금을 하면서 '목사 손에 들어갈 돈'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최근 교인들의 헌금으로 재물을 모은 질 낮은 자들이 있어 문제가 되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마땅히 다스려져야 할 범죄이지 그것 자체가 십일조의 의미를 유보시키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나 개인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다시 드린 것이고,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십일조는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로 교회는 단지 그 돈을 맡아 하나님의 뜻에 쓸 뿐이지 다른 것은 없다. 그 돈으로 교회에서 전도 사업을 펼치든, 구제 사업에 힘을 쏟든, 주일 학교 교육에 보태든 그것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렸기 때문에 내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십일조를 드리는 교인의 자세는 '내 것은 없다'는 고백에서 우러나와 하나님께 수입의 1/10을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보지는 않고 1/10이라는 수치에만 집중하며 '그렇게 교인에게 1/10씩 뜯어내면 남는 장사겠네' 내지는 '십일조 강요해서 목사들 배만 불린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네들은 잘못된 교회의 관행과 부조리를 힐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 말은 오히려 바른 자세로 십일조를 드리는 교인들을 오히려 허망하게 만드는 말들이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말 없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십일조를 내고 있는데, 괜히 교회와 목사를 들먹거리며 개인의 신앙 행위를 욕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십일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일각에서 이는 비난과 비아냥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한참 먼 곳에서 요란하에 변죽만 울려대는 것으로, 그로 인해 엉뚱하게 신앙 그 자체로 비난의 불길이 옮겨 붙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가 고쳐나가야 할 것은 신심을 불어넣는 신의 영역이 아니라, 그 신심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우는 인간의 영역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