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새로 건립된 혁신적인 대학교가 맞이한 고난의 시간

(원제: Crunch Time for North Korea's Revolutionary New University)

 

 

설립된 지 2년이 지난 평양과학기술대학교(이하 평양과기대)가 기금을 마련하고 실험 장비를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2학년 학생들의 영어는 꽤 인상적이지만 어딘가 허전한 게 있다. 프레피 룩의 자켓과 평양과기대의 여느 학생들이 매는 넥타이를 멋지게 갖춰 입은 최주남씨는 학교 친구들에게 유리 전극을 이용하여 pH를 측정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최씨는 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전극 그림을 가리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평양과기대의 유기화학 교수 대니얼 고 (Daniel Ko)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모든 게 이론 뿐이예요. pH 미터가 없기 때문이죠. 실험실 장비가 전혀 없어요." 마치 음식이나 주방 없이 진행되는 요리 수업만큼이랄까, 고 교수의 분석화학 강좌는 '분석'만 있을 뿐 '화학'이 없다.

 

그런데 고 교수가 미국 시민권자라는 그 단순한 사실이 여기서는 엄청난 뜻밖의 일이다. 그와 그를 따르는 독실한 기독교인들 몇몇이 공산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이곳에 북한 유일의 사립 학교를 건설한 게 2년 전이다. 29명의 외국 교수진들 중 절반 이상이 북한이 악마로 저주하길 마다하지 않는 미국 여권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이 평양의 남부 끝자락에 모두 남자로 구성된 267명의 상위권 학생들을 전부 평양과기대 캠퍼스로 보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국제금용까지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터넷 접속이 지극히 제한적인 이 땅에서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강의 숙제를 위해 구글을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담한 실험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과 맞닥뜨리고 있다. 평양과기대 건립에 필요했던 4억 5천만 달러의 돈의 많은 부분을 투자했던 남한 투자자들이 2008년을 기점으로 자금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인데 이 시기는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면서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이 북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할 것을 천명한 때였다. 그 이후로 천안함 폭침 사건이 2010년 3월에, 뒤이어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져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원투 펀치를 얻어맞은 대한민국은 환멸감에 휩싸였고 자연스럽게 평양과기대는 찢어지게 가난한 상태로 전락해 버렸다. "우리는 매주매주 풀칠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평양과기대 설립에 큰 역할을 했던 위원장 김진경 총장의 말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기관을 만들기 위해 큰 뜻을 품었던 김 총장이 느끼는 압박감은 실로 엄청나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갈 지 걱정입니다." 평양과기대에서 북한 정부의 지명으로 임명된 호광일 총장의 말이다. 실험 장비가 전무하고, 세계 유수의 교수진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평양과기대가 처한 이 현실이 무척 큰 문제라고 호 총장은 지적한다. 하지만 그와 평양과기대 관리들은 꽃이 필 그 날을 위해 시간을 기꺼이 바칠 뜻을 가지고 있다. "10년 안에 세계적인 수준의 학교로 만들어낼 것입니다."라고 호 총장은 말한다.

 

아무도 평양과기대가 쓰러지길 원치 않는다. 설립 초반의 우려를 잠식시키기 위해 외국 교수들과 학생들은 놀라울 만큼 끈끈한 동지애로 뭉쳤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 지난 6월부터 평양의 모든 대학생들이 학업을 뒤로 한 채 북한의 건국자인 김일성 탄생 10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평양 시내 아파트 블록을 세우고 도시를 미화하는 등의 건설현장에 투입되었을 때에도 평양과기대학생들은 예외를 인정받았다. 그만큼 평양과기대가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이건 정부의 크나큰 호의라고 봐야죠."라고 호 총장이 말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 없이는 우리 나라가 발전하지 못할 거예요." 북한 교육부에 의해 임명된 박상익 부총장의 말이다. "이건 정부가 아주 조심스럽게 보고 있는 일종의 실험장입니다." 평양과기대의 해외 리더십을 향한 목표도 높다. "우리의 목적은 평양과기대를 통해 북한이 세계화되어 경제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이를 통해 수월한 통일을 대비하자는 것입니다."라고 대한민국의 전 포항공과대학교 총장이자 미국 시민권자인 박찬모 평양과기대 총장이 말한다.

 

 

엄청난 격리상태

 

2001년에 북한 교육 관련 고위 인사들이 김진경 총장을 초빙하여 이곳에 대학을 설립할 것을 제안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가치의 심각한 충돌을 예상했다. 왜냐하면 김진경 총장은 신학을 전공한 비즈니스맨으로 제임스 (James)라는 미국이름을 가졌기 때문인데, 10여년 전에 북-중 접경 지대인 옌지 (연길)에 대학을 세운적도 있었다. 이들은 기독교가 북한으로 전파되는 교두보가 세워지는 소망을 간절하게 품어 왔던 것이다.

 

북한 정부는 개종을 시도하거나 종교에 대한 표현을 보이지 말 것을 분명히 했다. 몇몇은 김 총장과 그의 동료들이 그 규칙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했다. 김 총장은 이미 한번 심각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1998년 음식과 옷가지를 기증하러 북한에 방문했을 때 그가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스파이로 간주되어 몇 주간 옥고를 치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하게 무대로 귀환했다. 8월에 평양 최초의 명예시민권자로 그 이름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평양과기대는 2010년 가을에 문을 열었다. 이제 200명의 학부생과 67명의 대학원생이 속한 이 대학 정원의 1/4 은 평양 밖에서 왔다. 평양과기대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학부생들은 다른 북한의 대학교에서 2년을 보내야만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학생들은 정말 난해한 문제에 대해 묻고 밤을 새워가며 그걸 풀어요." 10살에 6.25 전쟁 때 북한을 떠난 적이 있는 한국계 미국인 전기공학 교수인 천유택 부총장의 말이다. "몇몇 학생들은 명석해요. 거의 MIT에 필적할 정도라니까요."라고 MIT에서 해양 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컴퓨터 과학 교수인 웨슬리 브루어 (Wesley Brewer)가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사실 학생들을 도취시키게 할 수 있는 위험한 힘은 학생들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교육부 관리들은 김 총장에게 했던 약속을 따라 북한에서 최초로 평양과기대의 인터넷 접속에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외국인 교수들은 이메일을 쓰고 웹서핑을 즐길 수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접속이 차단된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사이트를 다닐 수 있다. 대학원 2년차 학생들은 그들이 접속하는 사이트를 기록만 한다면 숙제를 위한 정보를 어디서든지 캐낼 수 있다. 대학원 1년차 학생들과 학부생들에게는 내년에 인터넷 접속이 허용될 것이라고 북한 최고의 대학인 김일성대학에서 교육받은 생물학자인 박 교수가 밝혔다.

 

일련의 조치는 북한의 가장 큰 관심사인 정보산업 기술과 관련이 있다. "북한은 IT를 경제 회복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도구로 선택했습니다." 평양과기대에서 가상현실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는 박 교수의 말이다. 10여년 전에 북한은 밝은 빛을 뜻하는 '광명 (Guang Myung)'이라는 이름의 국내 인트라넷을 신설했는데 이것은 외부 세계와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광명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북한은 500 여명의 IT 전문가를 유럽으로 파견했고 수백명을 더 중국으로 보냈다. 그 결과 북한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최첨단을 달리는 대한민국에 불과 몇 년 뒤쳐진 수준으로 따라잡는데 성공했다고 제어 시스템 전문가인 고려대 도낙주 교수가 말했다.

 

평양과기대의 과학 강의가 북한의 국가적 관심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에 북한 당국 관계자들과 재외공관관리들은 평양과기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주시한다. 예를 들어 교육부 관리는 평양과기대에서 MBA 과정을 개설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는데 그들 눈에는 이것이 미 제국주의와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우리는 이걸 국제금용관리라고 부르지요." 라고 언급했다.

 

사실상 평양과기대는 또다른 교수진이 있다. 김일성 대학 등의 북한 대학으로부터 겸임으로 이곳에 온 12명의 교수들은 강의를 맡고 있지는 않는다. 그들은 평양과기대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뒤섞인 태도를 취한다. 가장 큰 불만은 낙후된 시설이다. 수십대의 PC, 몇 개 안 되는 오실로스코프, 그리고 몇몇개의 다른 장비가 전부다. 그들은 논문 연구를 위해 실험을 수행하는 타 대학의 동료들에게 뒤쳐질까봐 상당히 걱정하고 있다고 학생들이 본지에 전했다. 네브라스카에서 건너 온 식물 육종학 교수인 로버트 솅크 (Robert Shank)는 "만약 실험실 장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으면 그 교수들이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을 대거 보내올까봐 내심 걱정이예요." 라고 말했다.

 

평양과기대는 학생들에게 되도록이면 많은 학문적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2월에는 20명의 대학원생이 베이징과 톈진에 있는 대학 탐방을 다녀올 예정이고 다른 학생들은 유럽의 에라스무스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데비 고 (Debbie Ko) 는 "우리는 학생들에게 바깥 세상을 좀 보여주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Liferay 사에서 초빙된 두 명의 컴퓨터 전문가와 Baylor 대학에서 온 다섯 명의 전기공학 교수가 평양과기대로 와서 가르치기로 되어 있다.

 

평양과기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학교 분위기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외국인은 캠퍼스를 떠나려면 반드시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 하며 항상 감찰자와 함께 해야 한다 (북한 당국에서는 외국인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때때로 단체로 외식도 하고 쇼핑을 하러 나가기도 하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다. 브루어 교수는 "제 차를 타고 드라이브 한 바퀴 돌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네요."라고 말한다. "우리 결혼기념일을 자축하려고 저녁 먹으러 가려고 할 땐 말이예요, 절대로 우리 둘이서는 허용이 안 돼요." 데비 고 교수 역시 덧붙인다. “자유가 그리워요.” 그들은 그러는 동시에 그들의 주인을 편하게 해 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평양과기대에서 10월에 열린 최초의 국제 컨퍼런스에서 준비된 음식을 먹기 전 감사 기도를 드리려 했던 그들은 권고에 따라 눈은 뜬 채 입술은 움직이지 말고 기도해야 했다.

 

'부패한' 사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학생들은 북한의 두 주요 사상인 '선군'과 '주체'에 대한 필수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이 강의는 김일성 연구 센터에서 진행되는데 유일하게 캠퍼스에서 북한 당국자들이 파견된 건물이다. 또한 올해 초에 북한 당국은 학부생들로 하여금 점심 전에 모여 학생 식당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행진할 것을 지도하기도 했다.

 

 

평양과기대의 판문점

 

학생식당은 학생들과 교수가 자리하는 가장 유연한 상호작용이 오가는 그런 평화의 마을과도 같은 곳이다. 월초에 점심 시간에 학생 넷씩 탁자에 앉아 매운 양념감자와 콩나물국, 그리고 매 식사마다 제공되는 주식인 밥과 김치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북한의 교수들은 그들의 문화대로 학생들과 친밀하게 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학생과 달리 외국인과 1대1로 만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다만 짝으로 만나면 괜찮다. 탁자 한 열은 평양과기대의 화려하게 차려 입은 보안 요원들의 차지인데 이 젊은 여성들은 털이 달린 회색 코트에다가 빨간 별이 장식된 러시아 스타일의 흰색 털모자를 쓰고 있다. 그들은 학생이든 교수든 다 친밀하게 대하지 않는다.

 

한국의 몇몇 관측통은 북한 정부가 평양과기대를 몰수해 버리고 김진경 총장을 쫓아낼 궁리를 찾는 게 아닌가 매우 노심초사해 하고 있다. 그러나 김 총장은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바쁘다. 그는 그의 시간 중 2/3 정도를 모두 해외에서 기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하는데 당장 이번 겨울에 매달 12만 달러의 유지비가 필요하다. 학교가 계속 잘 운영되게 하려고 박 교수는 그의 퇴직 연금을 기부했고, 김 교수의 아들들은 아파트를 팔았다.


몹시 추웠던 어느날 저녁, 공사판 인부들이 캠퍼스를 둘러 싼 철조망 바깥에서 불을 피워놓고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아마 다른 대학에서 차출된 학생들일 것이다. 그 때 한국계 미국인이자 금융을 가르치는 사이먼 박 (Simon Park) 교수는 “우리는 학생들에게 바깥 세상으로 통한 창문을 내어 주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의실 바깥 복도에 내걸려 있는 슬로건은 그러한 꿈과 이 학교의 현실이 극심한 인지 부조화 상태에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빨간색 배경에 흰 글씨로 쓰여진 슬로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Keep your feet planted here and see the world. (이곳에 뿌리를 박고 세계를 바라보라)”

 

Science, 2011, 334, 1624-1625. (DOI: 10.1126/science.334.6063.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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