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현대적인 퍼머넌트 웨이브(이하 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차례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고데기와 같이 머리를 손질하는 인두 혹은 아이롱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전 시대보다 안전해진 덕분에 사람들은 가발이 아니라 인체 모발에도 직접 이들을 활용하여 머리카락에 웨이브를 가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과 열만으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수소결합의 형태를 바꿔 머리카락의 케라틴(keratin) 고분자 다발의 형태만 임시방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지 근본적으로 영구적인 펌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가발에는 온갖 부식성 화학약품을 사용한 뒤 강력한 열처리를 통해 극적인 펌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러한 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별히 노력했던 사람이 바로 카를 네슬러(Karl Nessler)라는 독일사람이었다. 네슬러는 처음에 소의 오줌과 물을 섞어 사용했는데, 아마도 소의 오줌에 다량 함유된 암모니아(ammonia, NH3)와 요소(urea, H2NCONH2)가 그물망의 케라틴 다발에 들어가 부풀게 만들어 펌 과정을 수월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화학적인 용어로 고분자 가닥들이 다이설파이드 결합과 같은 결합들로 그물처럼 얼키설키 서로 연결된 것을 가교(cross-linking)라고 한다. 가교된 고분자는 일반적인 용매에 잘 녹지 않으나 용매가 가교된 분자결합 사이사이에 들어가 부풀어 오르게 되며 이것을 팽윤(swelling)이라고 한다. 말라붙은 미역이 물에 들어갔을 때 엄청나게 커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팽윤된 머리카락은 시쳇말로 야들야들해지고 결국 펌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소 오줌을 머리에 바르고 싶겠는가? 네슬러는 무려 10년 이상 약품과 특히 열처리 기계 개발에 매달렸는데, 최종적으로 그는 괴상망측하게 생긴 거대한 열처리 기계를 고안해내는 데 성공했다. 케라틴의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깨는 약품으로써 가성 소다를 사용했는데, 가성 소다는 수산화소듐(NaOH)이었기 때문에 이집트 여성들의 화학이 면면히 내려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의기양양해진 네슬러는 아내를 상대로 몇 번의 펌을 시도했는데, 처음에는 머리를 홀랑 다 태우고 두피에 화상을 입히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점 안전하고 더 나아진 기계를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사용한 열처리 기계는 무려 100℃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으므로 두피에 손상을 주지 않을 정도의 위치까지 롤러로 머리카락을 잘 말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네슬러가 떼돈을 버는 것은 시간 문제였는데, 여기에는 제 1차 세계 대전이 기여한 바가 크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근현대사의 비극이지만 과학기술 및 산업적으로는 크나큰 발전을 급속도로 가져오게 한 장본인이었고, 또한 여성들의 인권이 급상승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사건이었다. 남성들은 모조리 전쟁터에 나가서 조국을 위해 싸우게 되어 국내 산업의 노동력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고, 이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그간 억압받고 무시당하던 여성들이 일터의 전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남성들이 하던 일을 여성들이 훌륭이 맡아서 하게 되면서 여성들은 점차 여성의 능력과 정당한 대우 및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여성 인권 향상에 이른 것이다. 아무튼, 여성들이 남성들의 일을 맡다보니 신체적으로 부적합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머리카락이 길어서 일하다보면 거추장스럽거나 혹은 심각한 문제 ㅡ 긴 머리카락이 모터나 컨베이어 벨트에 끼는 사태 ㅡ 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하는 여성들은 목 아래로 머리가 내려오지 않도록 해야 했는데, 이 때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것보다는 펌을 하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실용성도 살리고 심미성도 가미하는 최적의 방안이었던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한 네슬러는 뉴욕에 헤어샵을 열고 펌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하였는데, 그의 헤어샵은 시카고, 디트로이트, 플로리다, 필라델피아에까지 분점이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찾아온 대공황의 전조였던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에 거의 모든 돈을 잃었다고 전한다.)

네슬러의 혁신 이후에는 더 빠른 기술 진보가 줄을 이었다. 특히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깨는 환원제(reducing agent)의 발전과 전기를 이용한 열기구의 발전은 1930년대에 이르러 거의 현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펌의 형태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전 글에서부터도 상보적인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긴 하지만, 환원제의 발전은 결과적으로 열기구가 높여야 할 온도를 낮추는 효과를 내어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인 펌을 가능케 하였다. 고도로 발전되어 지금도 비슷한 형태로 사용되는 환원제가 바로 싸이오글라이콜산암모늄(ammonium thioglycolate)이다.

첫 게시물에서 이야기한 것을 다시 떠올리자면 싸이오글라이콜산암모늄은 간단한 형태의 염으로 암모늄 이온(NH4+)과 싸이오글라이콜산 이온(HSCH2COO-)이 결합한 형태이다. 이 염은 약산과 약염기가 만든 염이기 때문에 물에 녹았을 때 이온들이 모두 그대로 물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이 원래의 암모니아(NH3)와 싸이오글라이콜산(HSCH2COOH)으로 평형을 이루며 존재하게 된다.

싸이오글라이콜산의 싸이올기(R-SH)는 케라틴의 다이설파이드 결합(R'-S-S-R')과 교환 반응을 하게 된다. 교환 반응이 진행되면 어느새 케라틴의 많은 부분의 다이설파이드 결합이 깨져 싸이올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환원제의 환원 작용이다. 이 때 암모니아는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하는데, 첫번째로 앞서 소개했듯이 케라틴을 팽윤(swelling)시키고, 두번째로는 염기성 조건을 조성하여 싸이올기를 싸이올산 음이온(R-S-)으로 만들어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더욱 잘 깨도록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환원제의 도포 이후 열처리를 거치면 케라틴의 가교는 모두 사라지게 되어 개별적인 케라틴 가닥들로 변화된다. 머리를 적당히 성형(?)하고 열처리를 거치면 머리가 그 형태로 고정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여기까지가 펌의 끝이었다. 그러나 현대 펌은 여기에 중화제(neutralizer)를 첨가함으로서 펌의 효과를 몇 달 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내었다. 대표적으로 쓰이는 중화제는 과산화수소(hydrogen peroxide, H2O2)로 싸이올로 모두 끊어진 다이설파이드 결합에 과산화수소가 도입되면 다시 다이설파이드 결합이 형성되어 이제는 머리카락이 변형된 형태로 진정한 화학적 고정을 거치게 된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싸이올산이 행했던 환원 작용을 거꾸로 하는 것이므로 산화 작용을 하는 것이며 따라서 과산화수소는 산화제(oxydizing agent)인 셈이다.

스트레이트 펌 역시 비슷한 화합물을 사용한다. 스트레이트 펌의 역사는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서 시작되었는데, 양잿물을 이용하여 머리를 펴던 것을 덜 유해한 현재의 파마약들로 다소 대체하여 펌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스트레이트 펌을 위한 약품을 펌 완화제(relaxer)라고 불러왔지만 현재에는 일반 펌 약품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고 한다. 다만 튜브나 막대 형태의 모양으로 돌돌 말아서 열처리를 하지 않고 특수한 아이롱 등으로 머리를 잡아 늘이듯이 열처리를 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펌은 수술과 같다. 피부 조직을 절개한 뒤 내부 기관에 의학적인 처리를 거치고 다시 조직을 봉합하는 것이다.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깨는 것은 의료용 메스가 아닌 싸이오글라이콜산이고, 열처리를 거친 뒤에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다시 만드는 것은 실밥이 아닌 과산화수소인 셈이다. 일견 시간만 참아내면 되는 간단한 과정인 것 같지만 펌 하나에도 이렇게 화학작용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때문에 현대 미용실은 그야말로 불특정 다수의 머리카락 샘플에 온갖 약품을 이용한 화학적 절개와 봉합이 수행되는 거대한 병원인 것이고, 어쩌면 요즘 거대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머리카락 '시술(施術)'이라는 표현이 이런 면에서는 썩 어색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