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논문 리뷰하자고 자리에 앉아 글을 읽다가 문득 in situ의 발음이 내가 아는 그 [인 시추]가 맞는지 자못 궁금해졌다. 보통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실험 혹은 측정을 하는 것을 표현할 때 in situ라고 하는데, 사전에 따르면 영국식으로는 /ˌɪn ˈsɪtʃ.uː/, 그러니까 [인 시추]가 맞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어구라면 영어 본연의 발음 대신 과거 라틴어의 발음을 따라가는 것이 통상적이다. 모교를 의미하는 alma mater도 통상적으로는 [앨머 마터]라고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i라는 글자의 발음이 단모음 /이/에서 장모음 /아이/로 점차 바뀌는 예가 생기면서 i를 포함하는 라틴어 문구는 읽는 게 제각각이 되었다. in vitro는 [인 비트로]지만 vice versa는 [바이스 버서]고, a priori는 [에이 프라이오라이]로도 읽지만 [에이 프리오리]라고 읽는 사람도 있고 [에이 프리오라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다. 하긴 이런 점에서 a라는 발음도 장모음 /에이/로 변화한 덕에 a를 포함하는 라틴어 단어도 사람마다 발음이 제각각이다. 단적인 예가 data 인데 우리는 [데이터]가 익숙하지만 생각보다 진짜 많은 사람들이 [다타], [다라], 혹은 [대러] 등으로 발음하곤 한다. 어쩌면 아무렇게나(?) 읽어도 큰 무리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in situ의 영국식 발음은 [인 시추]이지만, 미국식 발음은 [인 시투]라는 것이다. 최근 YouTube가 흥하면서 더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지만 YouTube의 영국식 발음은 [유:츄:브]에 가깝지만, 미국식 발음은 [유:투브]에 훨씬 가깝다. 영어를 배우다보면 '자음+u+자음+e'의 형태일 때 u는 /유:/로 발음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발음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단어들이 그렇게 발음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rude는 [루:드]고, lute는 [루:트]이다. 그런데 미국 영어는 이보다 더 나아가서 다른 것들도 /유:/를 /우:/로 바꿔나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New York인데, 우리는 늘 이 도시를 [뉴욕]이라고 발음하지만, 많은 미국 사람들은 일상 대화에서나 심지어 노래에서도 대개 [누욕]이라고 한다. SF 영화 Dune도 우리는 [듄]이라고 쓰지만 정작 미국 영어에서는 이를 [둔]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이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니 in situ를 미국 사람들은 ㅡ 물론 넓은 땅덩어리에 지역마다 발음은 제각각이겠지만 ㅡ [인 시투]에 가깝게 읽는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영어 발음을 잘 하기 위한 책 뭐 이런 걸 잠깐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서 알려주길 tree는 [트리]가 아니라 [추리]고, drum은 [드럼]이 아니라 [주럼]이라고 했다 (덤으로 erotic은 [에로틱]이 아니라 [이롸릭]이라고 했다). 이는 영어에서도 다반사로 일어나는 구개음화(palatalization)를 염두에 두고 얘기한 것인데, 몇몇 자음 뒤에 붙은 u에서도 일어나는 일인지라 영국식 영어에서는 tuna를 [추:너], duplicate는 [주:플리케이트], nuclear는 [뉴:클리어]라고 보통 읽는다. 하지만 미국식 영어에서는 /우:/로 발음되다보니 구개음화까지 회피하게 되어 이들을 각각 [투:너], [두:플리케이트], [누:클리어]에 가깝게 읽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공전의 히트를 쳤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한국인이 말하면 미국 사람은 어쩌면 처음엔 produce [프러두:스]가 아니라 pro-juice [프러주:스]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