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에 쓰는 제품 중 '과탄산소다(sodium percarbonate)'라는 것이 있다. 유한락스를 넣고 펄펄 끓여서 표백을 할까 고심하던 내게 어머니는 그런 위험천만한(!) 일은 벌일 필요가 없이 마트에 가서 이 '과탄산소다'를 사면 된다고 하셨다. 과탄산소다를 녹인 물에 더러워진 흰 세탁물을 먼저 넣어 적셔놓고 얼마간 있다가 손빨래를 하든 기계세탁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의 조언대로 하니 어느 조명 아래에서는 약간의 아이보리 색을 띠는 것처럼 보였던 유니클로 흰 옥스포드 셔츠는 본래의 하얀색을 되찾았다. 그런데 빨래를 하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은 다른 게 아니라 이것이었다: 도대체 과탄산소다가 화학적으로 무슨 화합물을 의미하가?


화합물 명칭에 과(過, per-)를 붙이는 경우는 다양한 산화수(酸化數, oxidation number)를 가지는 화합물에 한정된다. 예를 들어 보통 -2의 산화수를 가지는 산소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소와 결합할 시 H₂O 구조의 화합물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산화수소, 곧 물이다. 그런데 게중에는 산화 상태가 높아 -1의 산화수를 가지는 산소도 있는데, 이들이 수소와 결합하면 H₂O₂를 형성한다. 우리는 이러한 화합물을 붙일 때 '지나치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과(過)를 붙여 과산화수소(hydrogen peroxide)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다른 예로는 망가니즈산을 들 수 있는데, 망가니즈산 포타슘(potassium manganate)의 화학식은 K₂MnO₄로서 산화 원자단을 구성하는 중심 금속 이온인 망가니즈의 산화수는 +6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화학 실험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KMnO₄라는 화합물이 더 익숙한데, 이 화합물의 경우 망가니즈의 산화수는 하나 높은 +7이며, 그래서 우리는 이 화합물을 과망가니즈산 포타슘(potassium permanganate)이라고 부른다. (물론 과망간산칼륨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자, 탄산소다라는 명칭을 먼저 살펴보자. 원래 소다(soda)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바닷가에서 자라는 염생식물(鹽生植物)을 태운 재로부터 얻은 물질을 일컫는데, 이게 세탁 능력이 좋아 오래전부터 몸과 옷감의 때를 빼는 데 많이 활용되었다. 이 소다가 물에 녹아 염기성을 나타내는 Na₂CO₃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여기서부터 양이온 금속 원소인 소듐(Na; sodium)의 이름이 파생되었다. 본래 소다는 소듐의 탄산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듐염이라면 무엇이든지 소다라고 불리다보니 굳이 '소듐의 탄산염'이라는 것을 보다 명확히 밝히기 위해 '탄산소다'라는 일종의 겹말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때 탄산소다를 구성하는 탄소의 산화수는 통상적인 +4이다. 여기에 과(過)를 붙여 '과탄산소다'라는 이름이 탄생하려면, 탄소의 산화수가 +4보다 높아야 하는데... 그런데 내가 아는 지식 범위 내에서는 탄산 이온의 중심 원소인 탄소의 산화수가 +4를 초과하는 경우는 없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물에 집어넣은 과탄산소다는 대체 무슨 화합물이란 말인가?! 


검색해보니 답은 의외로 엉뚱했다. 과탄산소다의 정확한 화학식은 2Na₂CO₃·3H₂O₂으로, 이는 탄산소다와 과산화수소가 2:3의 비율로 서로 섞여있는, 그러나 결정을 이루고 있는 고체 물질이었다. 실제로 화합물 명칭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하는 국제순수응용화학회(IUPAC)이 일컫는 과탄산소다의 정식 명칭은 민망하게도 sodium carbonate—hydrogen peroxide (2/3) 였다. 이 물질 내에서 탄소의 산화수는 여전이 +4이니 이보다 산화수가 높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과탄산소다라는 이름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렇게나 널리 쓰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검색을 해보니 이 과탄산소다를 처음 제조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우크라이나 태생의 화학자인 세바스찬 타나타르(Севастьян Моисеевич Танатар)인데, 이 사람이 1899년 독일화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인 『Berichte Der Deutschen Chemischen Gesellschaft』에 게재한 논문에서는 Natriumpercarbonat (Na₂CO₄)이라는 물질의 제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Um Natriumpercarbonat zu gewinnen, löse ich Soda (7.5 g Natriumcarbonat) in kaltem 3-procentigern Wasserstoffsuperoxyd (100 g) und füge nach kurzer Zeit (5-10 Minuten) das dreifache Volumen Alkohol zu. (과탄산소다를 얻기 위해서는 탄산소듐인 소다 7.5 g을 차가운 3% 농도의 과산화수소수 100 g에 녹인 뒤 5~10분 정도 지난 뒤에 3배 부피만큼의 알코올을 집어넣는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의 탄산소다와 과산화수소수를 섞은 뒤 용매를 알코올 위주로 바꾸어 더이상 녹지 않는 고체를 석출(析出, precipitation)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타나타르는 이 물질이 Na₂CO₃보다 탄소의 산화수가 높은 Na₂CO₄, 즉 과(過)탄산소다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의 화학자들이 다양한 유기 및 무기화합물의 구조식을 정확하게 판별하기에는 아직 부족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화학을 배우는 고등학생들도 저건 잘못 쓰인 화학식이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과탄산소다는 물에 녹아 염기성을 띠는 탄산소다와 산화제로 널리 쓰이는 과산화수소가 함께 섞여 있는 물질이다보니 세탁시 흰 옷의 때를 잘 빼주면서 동시에 산소계 표백의 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상품성 있는 화합물을 '탄산소다-과산화수소(2:3)'같은 덜 매력적인 이름으로 판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과탄산소다'라고 하는 100년도 더 묵은, 틀렸지만 좀 그럴듯한 화합물 이름을 가지고 전 세계에 널리 쓰일 수 있었던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