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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orF
2023.07.03 01:18

안녕하세요, 영상에 등장하는 측정기는 멀티미터(multimeter)라고 하는 것으로, 검침을 위해 연결한 두 말단 전극봉 사이의 전류나 전압, 저항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입니다. 특별한 장비가 아니고 전기 검사를 하시는 분들은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시는 장비이며, 제가 가끔 고등학생들 상대로 화학 강의를 할 때 전기화학 관련된 실험이면 반드시 준비물로 있어야하는 장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비싼 장비도 아닌지라 인터넷에서 저가에 쉽게 구매하실 수도 있고요.

영상에서의 측정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 전극봉은 땅에 꽂혀 있고, 다른 전극봉은 땅과 접지되지 않은 우리 몸의 일부분(여기서는 손)에 접촉시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전기 회로가 만들어지고, 이 멀티미터는 대지와 손가락 사이의 전위차(ΔV)를 알려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위'차(差, difference)'라는 것입니다. 전위는 상대적인 값입니다.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우주 저 먼 곳(=무한원점)으로부터 내가 있는 곳까지 1 C의 전하량을 가진 전하가 다가왔을 때까지 해줘야 했던 일, 곧 에너지의 개념입니다. 즉, 대지의 전위는 무한원점에서 땅까지, 내 손가락의 전위는 무한원점에서 손가락까지 전하를 옮길 때 필요한 에너지라고 정의할 수 있지요. 이처럼 기준이 저 무한히 먼 곳에 있다보니 사람들은 속시원하게 우리는 지구(Earth) 위에 붙어 사는 존재들인만큼 대지(ground)의 전위를 0 V라고 그냥 정해준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산의 높이를 측정하는 것과 같지요. 백두산이 한라산보다 높기는 한데 무엇을 기준으로 높다고 할까요? 우리는 해수면을 해발 0 m 라고 정해놓고 높이를 비교하죠. 마찬가지로 역시 땅을 0 V라고 정해놓고 전위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왜 전위가 한자로 전(電)기적 위(位)치, 영어로 electric potential인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다시 영상으로 돌아가서, 멀티미터를 작동시켜 교류 전압을 측정하면 0.13 V가 나오는군요. 우리 몸은 외부 환경에 당연히 노출되어 있고, 전극봉을 쥔 손가락의 상태 등 여러가지 상황에 의해 전극봉을 잡은 손가락은 항상 전하를 띠고 있죠. 게다가 우리 몸은 완전한 도체까지는 아닌, 물리학적으로 보면 유전체(dielectric)이기 때문에 우리 몸 내부에서도 수많은 전하를 띤 분자들이 여기저기 늘어서있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형성된 전위 때문에 지금 우리 몸은 땅과 0.13 V만큼의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은 뭐 대단히 희한한 현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영상 속 주인공 분이 맨발로 땅을 밟습니다. 산을 걸어오셨으니 발에는 땀도 찼겠죠? 아무튼 완전한 부도체에 가까운 신발 밑창이 아닌 맨발로 땅을 밟으니 우리 몸은 땅과 접지(earthing/grounding)됩니다. 접지가 되면 전하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접촉한 두 물체의 전위가 같아지게 됩니다. 즉, 우리 신체 표면과  등전위면 (equipotential)가 되는 것이죠. 여기까지 읽으면 접지는 과학이구나! 싶으실텐데, 맞습니다. 접지는 과학이 맞습니다. 이 현상은 일반물리학을 배우는 대학생은 물론이고 정전기가 심한 날 손가락을 갖다대면 정전기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초등학생도 경험적으로 아는 사실입니다. 접지가 되면 전하는 빠르게 재분배되어 접촉한 두 물체 사이의 전위차를 0으로 만들어줍니다. 그것이 바로 영상에서 보시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맨발로 측정했을 때와 신발을 신고 측정했을 때 수치가 다르게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 맨땅요법의 효과를 논하려면 이제 그 접지를 통해 우리 신체의 표면 전하가 땅과 사이좋게 재분배되었을 때 어떤 긍정적인 신체 효과가 있는지를 논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이 핵심입니다. 어싱을 강조하시는 분들은 '이것 봐라, 전위차가 0이 되지 않느냐, 그러니 전하가 빠져나가서 몸에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땅과 전위차가 0이 된다고 하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저 그것은 접촉한 어떤 물건과 전자를 나눠가지는 물리학적 현상일 뿐, 그것이 생리학적 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제게는 이 말이, 단양시에서 자란 사과가 영주시에서 자란 사과보다 고도(=위치 에너지)가 높다고 해서 덜 유명한 사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과의 명성과 재배지의 고도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죠. 전위차와 생리학적 건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물건이 땅보다 더 낮은 전위를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체가 이 물건에 접촉했을 때 이론적으로는 더 많은 전하를 내보내게 되겠지요? 전하를 빼내는 게 좋고, 그래서 유익하다면 기왕이면 0 V 짜리 땅에 접지하는 게 아니라 -100 V 짜리 전위를 가지는 물건에 우리 몸을 접촉시키는 데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또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터무니 없는 말이죠. 하지만 어싱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대응은 저와는 무척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싱이라는 개념에서는 '땅'이 가지는 자연적인 어떤 이미지, 건강함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특성은 유사과학이 대체로 보여주는 화법 중 하나로, 일반적인 과학에서 언급한 공리(公理)와는 전혀 다른 공리를 상정한다는 것입니다 ㅡ 신은 존재한다, 자연계에서 얻은 물질은 합성한 것보다 더 안전하다, 땅과 연결되면 인간은 건강해진다, 이런 것들 말이죠.

맨땅요법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등전위면 형성 때문이 아닌, 오직 하나 ㅡ 사람들로 하여금 걷는 운동을 하게 만들고 밖에 나와 자연을 맛보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상쾌한 마음으로 걷고 뛰면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할 때보다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저는 결코 이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발 밖에 나가서 걸으시라고, 집구석에만 쳐박혀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내쉬며 푸른 산천을 느껴보시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치유를 접지에 의한 등전위면 형성이라는 기초적인 물리학적 현상과 결부짓는 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이며, 이러한 주장 이면에는 어싱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그로부터 이윤을 창출하려는 사람들의 속뜻이 있다는 점을 간파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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