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의 무료한 시간을 때울 겸 예전에 질러버린 책 '철학의 에스프레소'를 읽고 있다.

철학은 참으로 독특한 학문이다. 자연과학과 철학은 마치 정반대의 학문인 듯 하지만 세상의 진리 혹은 이치를 탐구한다는 면에서 어쩌면 본류는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동시에 자연과학자였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고대에는 철학은 정치가나 교육가 등이 되기 전에 필수적으로 배워야했던 학문이었다. 지금은 물론 그렇지 않다. 철학은 일종의 학문적 영역으로 전락해 버렸고 '철학과'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학문이 되고 말았다(물론 많은 사람들이 철학을 접하긴 하지만 근원을 파고드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라는 시험을 치른다지만 우리 나라의 철학 교육은 이미 중등 교육에서는 실종된 지 오래이다. 문과 사람들만이 배우는 과목이 되었고 그나마 이미 철학은 대부분의 학생들 마음에서 멀어져버린 지 오래이다. 우리는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니체가 왜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은 어느새 어렵고 고리타분한 과목이 되고 말았다.

사실 동아시아의 철학 교육은 100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세계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가르치는 과목 자체가 동양철학의 진수 그 자체였으니까. 신문물이라는 이름 하에 근대화 과정에서 들어온 과목들은 어느새 동양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거의 0에 수렴하게 만들어놓았다. 심지어 초중고 12년동안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의 위대한 철학자들이었던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에 대한 설명은 한 페이지정도를 읽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다지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철학을 매우 신기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철학은 어떠한 물질적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사유로서 행해지는 심오한 학문 ㅡ 이과에서 이런 과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ㅡ 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철학은 정신세계에서 맴도는 학문이기에 아무 실용성도 없고 굶어죽기 딱 좋은 학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 굶더라도 세상의 이치를, 인간의 본성을 조금 안다면 그날로부터 나의 삶은 완전히 변화할 것이다. 그런데도 과연 철학이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바보학문일까?

나는 철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다만 고1 과 고3 때 수업 시간에 조금씩 들어왔던 것 밖에는 뭐 아는 것이 없다. 그래서 철학에 대한 갈증은 꽤나 심각한 수준이다. 단지 내 앞에 놓여진 온갖 철학서적과 교양수업이라는 물병 안에 든 물이 내가 감당할 만한 것인지 두려워서 선뜻 잡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기회가 생기면 철학을 깊이 생각할 수 있겠지. 철학을 한다는 것이 고상하고 어려운 그리스 단어나 독일어 단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내가 몸담는 이 세상을 더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을 통해서 사유하는 방법을 알면 단순히 세상이 어떻다라는 두루뭉술한 개념 말고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의 본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좀 더 잘 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잠깐 생각해봤는데 만일 자연과학자가 철학자가 된다면 그 사람은 진실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질변화의 세계와 정신사유의 세계를 모두 궁구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물론 가장 위대한 사람은 신학자겠지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