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에스컬레이터를 두 줄로 타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가다보면 가끔 민망한 시선을 어디다 둘까 1초간 고심한 뒤 앞 사람의 뒷태, 혹은 바닥, 대부분은 일정한 속도로 스쳐지나가는 벽에 고정시키는 경우가 많다. 요즘 후자의 사람들을 위해 서울메트로에서는 친숙한 중년배우 한 분이 나온 에스컬레이터 두 줄로 타자는 홍보용 포스터를 아예 '도배'시켜 주셨다.

에스컬레이터가 보편화되어 백화점이나 공항 이외의 장소에서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에 나는 분명 TV광고에서 '선진국민은 에스컬레이터를 한 줄로 서서 탑승합니다'라고 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그 때 광고는 어떤 것이었냐면 비행기 탑승시각에 약간 늦은 직장인 하나가 두 줄로 서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번잡하게 비집고 들어가 빨리 올라가려고 시도,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엉켜서 실패하고 결국 비행기를 놓친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 직장인의 어이 없다는 식의 짜증 섞인 마지막 표정이 사람들 뇌리에 깊이 박혔던지 언제부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되면 사람들이 무조건 한 줄로 서서 왼쪽 줄을 깨끗이 비우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제는 에스컬레이터 왼쪽 줄을 통해 뛰어 올라가는 사람, 걸어 올라가는 사람이 많아져서 '도대체 몇 초를 줄이겠다고 저렇게 걸어 올라가나'하는 생각도 접게 될 정도로 에스컬레이터 상승 속도에 신체의 이동 속도를 더하는 행위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이것은 '교양 있는 선진시민의 에스컬레이터 예절'이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글로벌 시대를 사는 사람의 자세'였다.

그런데 갑신정변만큼이나 급격하게 갑자기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되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두 줄로 서서 타자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캠페인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 이유인즉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뛰거나 걸어서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사람들이 사고를 많이 당한다는 것이었다. 한 해 수백건 정도 된다고 하니 지하철 측에서도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건 마치 박지윤이 3집에서 '아무것도 몰라요~'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4집에서 곧바로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예요~'하며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것과 같으며 김윤아가 자우림 5집 제목을 'All you need is love'라고 붙여놓고선 바로 다음 솔로 2집에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라는 제목의 곡을 넣은 것만큼 조울증 그 이상의 심경 변화와 다르지 않다. 에스컬레이터를 두 줄로 타면 더 이상 급히 뛰어가는 사람을 볼 수도 없을 것이고 이제는 다시 예전처럼 사람들을 뚫고 에스컬레이터 위를 달리는 사람을 보고 '에티켓 꽝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 캠페인이 언제쯤 대중들 사이에서 완벽히 먹혀들 것이냐는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지하철에서는 한 줄로 타는 옛 아닌 옛 미덕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으며 선뜻 용기있게 비워진 왼쪽 줄에 나란히 서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어느새 사람들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훈트의 규칙(Hund's Rule)'을 지키기 시작하더니 그게 체화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한 줄로 서기와 두 줄로 서기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민은 과연 '남을 위한 배려'와 '나의 안전 우선'의 미묘한 신경전의 결과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을 위한 배려를 강조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한 줄로 타자고 했을 때에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생활양식을 바꿨다는 것. 그에 반해 당신들의 안전을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두 줄로 타자고 하니까 여전히 '배려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눈치보여 많은 사람들이 생활양식을 바꾸길 꺼려한다는 점.

이건 타고난 이타주의에서 비롯된 것일까? 글쎄, 마음에서 우러난 이타주의가 아니라 남의 이목을 의식하는 이타주의? 뭐, 그런 이타주의도 결국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긴 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