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의 하나로 정의되어 있는 식물인 '양귀비'는 붉은 꽃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 한국어에서는 매혹적인 이 꽃에 당(唐)나라 현종(玄宗)의 후궁이었던 귀비 양씨(貴妃 楊氏)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런데 중국어로 이 꽃의 이름은 '양궤이페이(杨贵妃)', 즉 양귀비가 아닌 '잉쑤(罂粟)'이다. 한국어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앵속(罌粟)이 되는데, 여기서 '양병 앵(罌)'은 배가 불룩하고 목이 좁은 병(=양병)을 말하고, '조 속(粟)'은 곡식인 조를 말하는 것이니 마치 배불뚝이 병과 같이 생긴 열매의 모습에 곡식같이 생긴 씨앗의 모습을 빗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조선 초기에 우리나라 선조들도 이 양귀비를 가리켜 한자로는 罌粟과 비슷하게 적었다고 하는데, 이 단어를 한자음을 빌어 이두(吏讀)식으로 표현한 것이 '양고미(陽古米)'였다고 한다. 여기서 '양(陽)'은 양병(=罌)을 의미하고, 고미(古米)는 벼과에 속하는 '줄(菰; 줄 고)'이라는 식물의 씨앗(米)을 의미하는 것이니 사실상 罌粟을 훈독(訓讀)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반도 사람들도 양귀비 열매와 씨앗이 마치 양병과 어떤 곡식같다는 것에 수긍했던 모양이다. (참조: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1107) 


더 재미있는 것은 이 꽃의 일본어 이름이다. 일본어로 양귀비를 '게시(ケシ)'라고 하는데 이 말에 대응하는 한자어는 본래 芥子로, 이 단어를 모두 음독(音讀)한 것이다. 하지만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뭔가 깜짝 놀랄텐데, '겨자 개(芥)'와 '아들 자(子)'의 조합이니 곧 이 단어는 사실 겨자(씨앗)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귀비 꽃을 의미하는 한자가 일본에서는 사실 겨자라니? 


실제로 일본어에서 겨자를 부르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芥子라고 나오는데, 이 한자는 훈독과 음독이 혼합되어 '가라시(カラシ)'라고 읽는다. 같은 한자를 다른 방식으로 읽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본인들에게는 지칭하는 바와 문맥에 따라 달리 읽으면 그만이지만, 이런 방식은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힌트라고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겨자를 다른 한자로 辛子라고도 표현하는데, '매운'이 일본어로 '가라이(辛い)'이니 거기서부터 발음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겨자가 맵다보니 芥라는 한자를 훈독해서 겨자를 표현할 때에는 辛에 이끌린 '가라'를 쓰는 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대체 왜 일본에서는 양귀비를 뜬금없이 겨자와 관련된 芥子라고 쓰고 '가라시'라고 읽는가? 그것은 아마 일본 사람들은 양귀비 씨앗이 겨자 씨앗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이 씨앗만 보고 양귀비와 겨자를 헛갈렸을 수 있고, 혼동해서 芥子라고 쓰다가 두 식물이 엄연히 다른 것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양귀비는 음독으로, 겨자는 맵다는 의미를 더 살린 훈독을 가미한 방식으로 읽는 것으로 분화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러한 혼동이 무로마치(室町) 막부 시대에 진행되다가 정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한·중·일에서 지어 준 양귀비 이름은 씨앗의 모습을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조(粟)와 기장(黍)의 재배가 진행되었던 중국에서는 조(粟)로부터 이름을 고안해 '잉쑤(罂粟)'로, 그보다 늦은 시기에 조와 기장이 전래된 한반도에서는 보다 친숙한 벼과 식물인 줄(菰)로부터 이름을 착안해 '양고미(陽古米)'로, 그보다 더 늦은 시기에 조와 기장이 전래된 일본에서는 더 비슷하다고 여긴 겨자로부터 이름을 이끌어 내어 '가라시(芥子)'가 된 것이다. 단지, 한국에서만큼은 그 '양고미'라는 이름이 붉은 꽃의 아름다움에 보내는 찬사와 결합하여 발음이 비슷한 '양귀비(楊貴妃)'로 전이(傳移)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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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