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용액 농도를 결정하기 위해 수행하는 화학분석법 중 하나가 바로 적정(滴定)이다. '물방울 적(滴)'과 '정할 정(定)'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농도를 알고 있는 표준 용액을 뷰렛으로부터 한 방울씩 떨어뜨려가면서 종말점을 찾는 실험 모습에 착안해서 번역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영어로 적정을 titration [타이트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프랑스어 titre [티트르]에서 왔다고 한다. 현대 프랑스어에서 titre는 영단어 title [타이틀]과 같은 의미인데, 이 단어는 과거 프랑스에서는 귀금속 합금의 순도를 나타내는 의미로도 쓰였다고 한다. 귀금속의 순도야말로 귀금속의 값어치와 용도를 결정해주는 대푯값, 즉 '타이틀' 이었으니 이런 부분에서 그 의미가 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귀금속 순도와 '타이틀' 간의 연결고리는 적정을 일컫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단어로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 각각 titulación [티툴라씨온], titulação [티툴러상], titolazione [티톨라치오네]라는 점에서, 이 모든 단어들은 사실 라틴어 titulus [티툴루스]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화학자인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Joseph Louis Gay-Lussac)은 미지의 용액 농도를 구하는 분석화학 실험과 시중에 유통되는 귀금속의 순도를 알아내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 모양이다. 그는 1828년에 제출한 논문에서 시료의 농도를 결정하기 위한 행동으로서 titre에서 만든 titrer [티트레]라는 동사를 최초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 단어가 영어로 옮겨가 titrate가 되었고, 여기에 명사형으로서 titration이 된 것이다. 이런 적정 관련된 분석화학은 19세기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행한 것 같은데, 당장 적정 및 용액의 정확한 부피 측정을 위해 쓰이는 대표적인 실험 도구가 pipette [피펫], burette [뷰렛]과 같은 프랑스어 단어들이라는 데서 알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titration을 滴定이라고 번역하는 학자들 입장에서는 프랑스어 단어 titre에 녹아 들어있는 귀금속 순도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배경을 한자로 직역하기에는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대신 이들은 (아마도) 화학 입문서 등에 나와 있는 그림자료를 통해 유리 용기로부터 용액이 방울져 떨어지는 것에 주목했을 테고, 그것으로부터 滴定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으리라 생각한다. 이 단어는 한중일 3국이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