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의미로 쓰이는 한자 중에 傑이 있다. 걸출(傑出)하다는 표현에도 들어 있는 이 한자는 호걸(豪傑), 준걸(俊傑)에도 쓰여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된다. 한자의 짜임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왼쪽에는 사람인변(亻)이, 오른쪽 위는 어그러질 천(舛), 아래는 나무 목(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른쪽 부분은 상하로 모여 홰 걸(桀)이라는 한자를 구성하므로 뜻을 나타내는 형부(形部)는 사람인변, 소리를 나타내는 성부(聲部)는 홰 걸이 맡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전형적인 좌형우성(左形右聲)의 형성자(形聲字)인 셈이다.


그런데 桀이라는 글자가 재미있다. 윗부분인 舛는 본래 반대 방향으로 놓인 두 발을 의미하는 글자에서 비롯되었다. 춤추다는 의미의 舞와 번쩍거리는 도깨비불을 내는 존재를 의미하는 粦의 아랫부분에서도 이 글자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글자가 나무 위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두 발을 가진 사람이 나무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한자를 '홰 걸'이라고 하는데, 홰는 새나 닭이 올라갈 수 있도록 가로질러 놓은 나무 막대를 의미하는데, 당연히 바닥보다 높은 곳에 홰가 걸려있기 마련이다. 즉, 사람이 나무 위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있으니 남들보다 높은 곳에 있고, 그러니 이 글자가 '뛰어나다'는 뜻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다만, 이 글자가 전설상의 중국 왕조인 하(夏)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걸(桀)의 이름을 나타내는 한자로 자주 쓰이다 보니, '뛰어난 사람'을 강조하기 위해 사람인변을 더해 亻+桀=傑을 만든 것이고, '나무 횃대'를 강조하기 위해 나무목변을 더해 木+桀=榤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한자 뿌리읽기]<234>舛(어그러질 천, 동아일보, 2005.) 그러니 傑을 이해하는 것은 본래 글자인 桀을 이해하는 것으로 환원된다.


그런데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에게 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이 한자에 '흉폭(凶暴)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같은 한자에 '뛰어나다'는 뜻과 '흉폭하다'는 뜻이 공존할 수 있단 말인가? 재미있게도 이 글자의 전서(篆書)체를 보면, 탈 승(乘)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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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桀이고 오른쪽이 乘이다. 두 글자의 차이는 본래 사람을 의미하는 글자가 축약된 돼지해머리 두(亠), 쉽게 말해 뚜껑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전서체보다 더 앞선 시기의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 형태를 보면 桀에도 사람 형태의 모양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뤄볼 때, 桀과 乘에는 의미상 큰 차이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乘은 높은 곳에 올라타다는 의미가 전달되어 탈것에 올라타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각별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문자로 합쳐지거나 흡수되지 않고 서로 다른 음과 뜻을 가진 한자로 갈라져 내려 온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가 힌트를 줄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는 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磔也。从舛在木上也。(磔을 말한다. 舛(두 발)이 木(나무) 위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桀이 磔과 같은 뜻이라고 한다. 磔의 뜻은 책형(磔刑)인데, 이것은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이다. 이런 뜻풀이를 고려해 보면, 桀는 단순히 사람이 나무 위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니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구체적인 사람의 자형을 보존하고 있던 乘이야말로 사람이 나무 위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니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꼬리를 무는 궁금증은 현대 중국어에서 傑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간체자(简体字)인 杰을 살펴보면 좀 더 해결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글자는 현대 중국어에서 새로 고안한 한자가 아니라 예전부터 傑과 같은 의미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왔던 속자(俗字)였다. 중국에서 간체자를 제정할 때, 좀 더 적은 획수의 간단해 보이는 속자가 있으면 그것을 채택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頭의 속자였다가 간체자로 제정된 头가 있다. 아무튼 오래 전부터 획수가 많은 傑을 대신해서 杰이 쓰였는데, 속자로 쓰이다보니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아 보여도 발음은 똑같이 '걸 (현대 중국어로는 jie)'이다.


이 글자도 뭔가 범상치 않다. 위는 나무 목(木)이고 아래는 연화발(灬)로 곧 불 화(火)로, 마치 나무를 태우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형태로서는 단순한 연소(燃燒)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뛰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질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桀이라는 글자가 본래 책형을 당하는 사람을 그린 모습에서 온 글자이면서 '뛰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杰이라는 글자 역시 어떤 형벌을 당하는 사람을 그린 모습에서 온 글자이면서 '뛰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형벌을 당하는 것과 뛰어나다는 의미가 어떻게 상통할 수 있는지는 차치해두고서라도, 같은 뜻을 가지고도 다른 형태로 돌려쓴다면 반드시 공통점은 있어야 하기 마련일테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杰이라는 글자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전서체로 옮겨 쓸만한 시기에도 있었다면 붉을 적(赤)과 굉장히 흡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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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의 전서체는 위와 같은데, 이 글자의 윗부분은 본래 사람을 의미하는 큰 대(大)였고, 아래는 火였다. 즉, 사람을 불에 태우는 화형(火刑)을 의미했다. 이러한 자원(字源)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사람을 나무말뚝에 묶어 화형을 벌인 것이라면, 윗 글자에 木을 썼을는지도 모를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杰은 桀과는 다른 방식의 사형 방식이고, 그러니 桀과 상통함과 동시에 '뛰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랬으니 사람들이 속자로 오랫동안 사용해왔지 그러지 않고서야 땔감이나 태울 때 쓰일 법한 이런 글자를 '뛰어나다'라는 의미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杰가 전서체가 쓰일 춘추전국시대에도 쓰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므로, 그냥 비전문가의 대담한 상상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길...)


그렇다면 왜 이런 사형 방식이 '뛰어나다'라는 의미와 연결될 수 있었을까? 갑골문 기록에 따르면 상(商)나라의 주적이었던 이민족인 강(羌)족에 대한 실로 다양한(?) 인신공양 제사가 벌어졌는데, 책형과 화형도 인간 제물을 바치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 일부였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희생시켰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분명히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이런 형벌로 희생시키지는 않았을테고, 아마 포로들 중 유력한 이들 몇몇을 극형에 처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극형에 처하는 사람들은 상나라를 위협할 만큼 뛰어난 사람들이었거나 다루기 힘들 정도로 난폭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桀에 '흉폭하다', '뛰어나다', '교활하다' 등의 뜻이 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傑을 해석하면서 '책형에 처한 사람의 영혼은 강인하며 뛰어나다'라고 언급했는데, 아마 이런 의미에서 그렇게 뜻풀이를 했을 것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傑出한 豪傑을 일컬을 때 자주 사용해 왔던 한자 傑에 이런 무시무시한 고대 중국의 형벌이 도사리고 있었으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오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참 재미있는 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