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다가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길래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이미 밝아지고 있는 터라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침대 옆에 있던 협탁에 있던 눈가리개를 집어 쓰고는 이불에 들어간다. 그런데 왠일인가. 우당탕탕 소리에 결국 나는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눈가리개를 벗고 앞을 보니 이럴수가. 그간 고요하게 잘 있던 CD와 DVD 더미가 모두 땅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져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일어났나 생각해보니, 아차. 눈가리개 때문이었다. 눈가리개는 사실 위와 옆으로 나란히 쌓인 CD와 DVD 더미 위에 놓여 있었다. 물건 위에 있던 눈가리개를 내가 가져다 쓰는 바람에, 즉 제거하는 바람에 물건들이 이루던 평형이 깨어져 결국 무너져 버렸던 것이다.

내 지우개 무게만도 못한 눈가리개가 실은 이 '위태로운 평형'을 이루는 실로 위대한 물건이었다니. 그리고 꽤 안정적이었다고 생각한 CD와 DVD 더미가 실은 '위태로운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니.

세상에는 눈가리개같이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보이는 것들로 인해 ㅡ 영구적인 안정을 이룬 것 같아 보이지만 ㅡ '위태로운 안정'이 유지되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작아보인다고 함부로 제거해버리면 어느새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것이다. 화학실험도, 정치경제도, 그리고 생태계도.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