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전북 행정동 1층에서는 KIST 역사와 관련된 몇몇 전시물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박정희 前 대통령이 당시 과학기술처장관이었던 최형섭 박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매우 짧은 편짓글인데, 얼핏 봐서는 도통 무슨 말이 쓰여있는 지 알 수 없다. 적힌 한자를 그대로 옮겨 적으면 아래와 같다:


崔亨变 長官 坐下

舍宅을 移転한다는데 写真을 보니 약간 修理를 要할듯하여 보내드립니다. 納하시앞.

7.11

박정희


이 비밀 암호문같은 서한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지식이 필요하다.

  1. 变은 燮(불꽃 섭)의 약자이다.
  2. 坐下는 편짓글에서 수신자를 공손히 부르는 座下를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3. 転은 轉(구를 전)의 약자이다. (현대 일본어 신자체)
  4. 写真은 寫眞의 약자이다. (현대 일본어 신자체)
  5. 内는 內(안 내)의 약자이다. (현대 일본어 신자체 및 중국어 간체자)
  6. 笑納이란 편짓글에서 보잘것 없는 물건이더라도 웃으며 받아달라는 의미의 겸손한 표현이다.
  7. '-하시앞'은 '-하시압'을 달리 쓴 것으로 보이는데, '-(하)시압'은 알리는 글 등에서, 다수의 사람에게 어떤 일을 청하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이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쓰는 정자체 한자와 독음을 달아 고쳐 보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최형섭(崔亨燮) 장관(長官) 좌하(座下)

사택(舍宅)을 이전(移轉)한다는데 사진(寫眞)을 보니 약간 수리(修理)를 요(要)할 듯하여 보내드립니다. 소납(笑納)하시압.

7.11

박정희


이 글을 요즘 쓰는 말로 바꾸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최형섭 장관님께,

사택을 옮기신다는데 사진을 보니 약간 수리가 필요할 것 같아 보내드리오니, 적더라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7.11

박정희


최종 해독을 마치기까지 아버지와 친구 용석이와의 의견 교환이 아주 필수적이었다. 나름 한자를 배우고 알았다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정확하게 원뜻과 용례를 이해하기까지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고, 해석을 완료했을 때에는 가슴 속에 막혀 있던 체증이 뚫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50여년 전에 쓴 편짓글이 이처럼 난해한데, 과연 50년 뒤에 쓰일 이메일 글은 지금과는 또 얼마나 어떻게 달라지려나?


여담이지만, 이 짤막한 편짓글을 통해 당시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대통령과 대한민국 최장수 과학기술 분야 부처 장관 사이의 관계가 각별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