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미술을 배울 때의 얘기였다. 나와 내 동생은 한 화가에게서 미술을 같이 배웠다. 우리 집에 뭐 여유가 있었다는 건 아니지만 부모님께서는 기왕 제의가 들어왔으니 기회를 그저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볼 때, 이건 정말 잘하신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 동생은 이것을 계기로 자신의 비전을 삼았으니까.)

한창 배우다가 얼마 지나서 소묘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계적으로 왔다갔다 하며 연필로 선을 그리시는 모습이 신기했다. 처음에 집에 있던 컵을 가지고 그림을 시범적으로 그리셨는데 당시로서는 눈이 휘둥그래질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가시고 난 뒤에 스케치북 여백에 다섯개의 컵을 더 그려넣었지만 왠지 '군계일학'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를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내가 '소묘가 이런 거다'를 대충 알았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느 날 석고'구'를 들고 오셨다. 구를 그린다기에 원 동그랗게 외곽선 그려넣고 바깥에서 빛이 입사되는 부분까지 순차적으로 밝아지도록 그리면 되겠지 뭐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완전히 나의 예상은 깨지고 말았다. 구를 그릴 때 물론 빛이 직접 입사하는 곳을 하이라이트(High light). 가장 밝은 부분이다. 그런 두번째로 밝은 부분은? 두번째로 밝은 부분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있었다. 바로 빛이 입사되는 부분의 반대방향, 즉 그림자와 만나는 부분이었다. 빛을 오른쪽 위에서 받는다고 보고 자세히 살펴보면 석고의 왼쪽 아랫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지지만 끝에 가서는 다소 밝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점점 어두워져야지 왜 어두워지다가 갑자기 끝자락에 가서 밝아지는 걸까?

그런데 이유는 있었다. 바로 반/사/광. 주변 바닥에서 반사되는 빛이 구의 표면에 ㅡ 특히 다크 사이드(Dark side) 아랫부분 ㅡ 도달하게 되어 어느정도 그 부분은 어두움이 약해지고 밝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반사광은 나와 함께했다. 숙제를 위해 원통이나 구를 그릴 일이 있으면 가끔씩 양감을 집어넣고 그림자와 함께 반사광을 집어넣었다. 어느새 그것이 미술과 관련된 내 유일한 습관이 되고 말았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