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퍼머넌트 웨이브(이하 펌) 자체의 과학에 대해서 조금 늘어놓으려고 한다. 귀찮게 느껴질 화학 및 분자 이름이 등장하기 전에 간단히 펌의 역사를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천지창조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과연 생머리였는지 곱슬머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둘 다 생머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머리카락의 곱슬머리 인자가 생머리 인자보다 더 우성이므로, 순종열성인 교배 결과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영원히 순종열성이기 때문이다. 말이 좀 이상하게 전개되었지만, 풀어 이야기하자면 생머리 아담과 생머리 하와에게서는 생머리 가인, 생머리 아벨, 생머리 셋이 나왔을 것이고 결국 이들의 자손들도 죄다 생머리일 뿐 곱슬머리는 전무후무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무튼 머리카락의 곱슬거림 정도는 시대가 지날수록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 형태를 띠게 되었고, 전 인류 중 어느 사람들은 완전 생머리, 어떤 사람들은 완전 곱슬머리,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적당한 곱슬머리를 갖게 되었다.
문제는 항상 극단에서 출발하였다. 심각한 생머리와 곱슬머리를 가진 현대 사람들이 '내 머리카락은 왜 요 모양일까'라고 불평하는 것처럼 고대 사람들 역시 같은 불만을 제기했던 것이다. 심각한 생머리 혹은 곱슬머리로는 자유로운 머리스타일을 구현하기 어려웠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고대 사람들이 생각한 방법은 끈적이는 식물성 액체를 머리에 바르되 손으로 구불구불한 형태를 준 채로 그대로 말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원시적이고 일시적인 펌 형태인지라 물만 묻게 되면 자동적으로 다 풀리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 좀 더 펌의 형태를 화학적으로 발전시킨 단적인 예가 고대 이집트에서 행해진 펌이다. 고대 이집트 여성들은 펌을 하기 위해 진흙을 머리에 바르고 나무 막대기를 꽂아 머리를 돌돌 말은 다음, 따뜻한 볕이 드는 장소에 하루 종일 앉았다고 한다. 물론 매일의 삶이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는 것과 같은 사람들에겐 이것은 사치이고 쓸데없는 짓이며, 일부 아프리카 인들에게는 작렬하는 태양볕의 위험을 증대시키는 위험한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이집트 상위 계층 여성들에게는 멋을 내기 위해서 남편의 불만과 하루종일 땡볕에 나가 앉아 있는 정도의 고생은 감수할만 했던 모양이다.
무엇이 화학적으로 진일보했을까? 인체의 상피구조의 기본은 대부분 케라틴(keratin)이라고 불리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의 주요 구성 아미노산은 시스틴(cysteine)이다. 시스틴은 곁가지에 머캅토메틸(mercaptomethyl, -CH2SH)기가 붙은 아미노산이다. 혹 전 게시물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거 '싸이오-'라고 읽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볼 테지만 사실 이전 게시물에서 알려주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황 화합물을 관용명으로 부를 때 머캅토-(mercapto-)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황 화합물, 특히 싸이올 물질이 수은과 잘 결합한다는 뜻의 라틴어인 'mercurium captans'의 줄임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끝에 붙은 싸이올기(-SH)인데 케라틴 내에 존재하는 무수한 싸이올기들이 서로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다이설파이드 결합(-S-S-)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무수한 가닥들을 촘촘히 그물처럼 연결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화학적 특성으로 인해 케라틴은 기계적으로 적당히 질긴 물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다이설파이드 결합은 여러가지 화학적 약품에 의해 쉽게 끊어질 수 있다. 대표적인 물질이 싸이오글라이콜산암모늄과 같은 펌 약품이다.
자, 이제 진짜 펌 이야기로 돌아가자. 끈적이는 식물성 액체를 이용한 펌은 마치 머리에 풀을 발라놓은 것과 같은 것으로 그대로 굳었을 때 모양이 유지되는 것은 용매의 증발에 따라 거대 케라틴 다발(머리카락)과 끈적이는 물질의 '복합체(composite)'이 그대로 함께 물리적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 경우 풀 역할을 해 주는 물질이 물에 씻겨나가면 그대로 케라틴 다발들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며 그 결과 곱슬머리 성질은 바로 잃게 된다. 이것은 화학적인 펌이 아니다. 화학적인 펌은 케라틴 다발 수준에서 형태를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케라틴 내의 아미노산 수준에서 형태를 변경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시스틴과 시스틴 사이의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즉, 외양상 모양만 굳혀놓는다고 능사가 아니고 케라틴 수준에서 머리카락의 근본적인 모양을 바꿔야 진짜 펌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집트에 문명을 가져다 준 나일 강은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범람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범람시 강 상류에서부터 운반되어 온 각종 천연미네랄 성분으로 인해 나일강 주변의 토양은 범람 이후 더욱 비옥하게 되었다. 비옥한 나일강 주변 토양에는 당연히 다양한 식물체에서 연원한 포타슘(K) 및 소듐(Na) 성분이 많았을 것이고 이로 인해 나일강 주변의 토양은 기름진 염기성 토양이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고대 이집트 여성들은 나일강 주변 토양에서 얻은 염기성 진흙이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깨드려 본연의 싸이올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여성들의 펌 방식은 다음과 같다. 염기성 진흙을 머리에 바름으로써 케라틴의 다이설파이드 결합을 깨뜨린다. 다이설파이드 결합이 깨지면 케라틴 단백질들은 더 이상 그물 구조가 아니라 결합하지 않은 자유로운 사슬 다발 구조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이집트 여성들은 나무 막대기를 머리에 꽂아 돌돌 말았기 때문에 아마도 머리카락은 이 돌돌 말린 형태의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 때 반응을 수월하게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열을 가하는데, 당시에는 헤어 드라이어나 열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작열하는 태양볕에 나가 앉아 있는 것으로 대신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환원되었던 시스틴의 싸이올기가 서로 결합하여 다이설파이드 결합이 되고 결과적으로 헤어 펌 완료.
이것은 획기적인 발전이고 화학의 승리였다. 우리가 이집트 벽화에서 보는 심각한 생머리 여성들의 모습과는 달리, 나일강의 염기성 진흙 덕분에 이집트 여성들은 화려하게 잘 '말린(curly)' 머리카락을 뽑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펌 당시 건조함을 유지하는 것이 이집트 여성들이 지켜야 할 철칙 중 하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물 분자가 케라틴 내에 끼어들게 되면 수소결합을 통해 케라틴 고분자가 새로운 정렬 형태를 가지게끔 하고 결과적으로 돌돌 말린 형태로 유지되지 못하게끔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요즘에도 항상 펌을 하면 '내일은 머리 감지 마시고요 머리가 눌리는 모자같은 건 쓰지 마세요'라고 하지 않는가. 요즘 펌은 그나마 나은 것이다. 이 당시에는 펌을 할 때 중화제(neutralizer)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분이 공급되기라도 한다면 하루 내내 고생스럽게 태양볕에 앉아 있었던 수고가 그야말로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곱슬머리를 가지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너무나도 값비쌌다. 또한, 나일강과 같은 천혜의 펌 약품 공급지역이 없는 다른 지역에서는 펌이 불가능했고 설사 대체 물질을 찾아 한다 해도 효과가 떨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약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뜨거운 온도에서 머리카락 변형이 쉽게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머리에 직접 뜨거운 열을 가하여 펌을 하기 시작했는데, 펌에 활용하기 쉬운 적당한 형태의 뜨거운 물체를 적절한 물질로 만드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던지라 머리카락을 태우고 두피에 화상을 입히기 일쑤였다.
결과적으로 펌의 역사는 상당 기간 가발의 역사와 같이 하게 되었다. 인체에 직접 강한 열을 주어 불상사를 만들지 말고, 가발에 그러한 과정을 거치게끔 하여 곱슬한 가발을 만든 다음 그것을 사람이 뒤집어 쓰는 것이다. 근대 유럽의 절대왕정 시대에 곱슬거리는 흰 가발이 전 유럽에 유행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신나게 펌한 가발을 만들어 쓰게 되었다. 가발 문화는 프랑스에서 대유행하여 인근 유럽 왕실 및 미국에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덩달아 펌 문화 역시 가발을 타고 전파 되었다. 펌 문화가 다시 가발 문화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더 큰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 20세기 초엽의 일이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