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머물면서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는데 세상 온통 주변에 독일어로 쓰여있어서 눈만 돌리면 배울 게 천지 가득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전북도지사의 드레스덴 방문과 관련해서 해당 기관으로부터 안내 이메일을 받았는데, 거기에 Teilnehmer라도 쓰여있어서 이게 무슨 뜻인가 봤더니 '참가자'라는 뜻이었다. 머리를 간단히 굴려보면 '참가하다'라는 뜻의 teilnehmen이라는 동사에서 왔다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원에 관심이 많다보니 도대체 이 동사는 왜 이런 뜻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자연스레 올라오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이 단어는 부분(Teil)이라는 명사와 취하다(nehmen)라는 동사를 합쳐 만든 복합어였다. 왜 그런가 살펴봤더니, 라틴어로 '참가하다'라는 뜻을 가지는 동사의 원형이 participare인데, 이 단어는 본래 부분(pars)이라는 명사와 취하다(capere)라는 동사를 합쳐 만든 복합어였다는 것이다. 즉, 독일어 동사 teilnehmen은 라틴어 동사 participare의 번역차용(飜譯借用), 흔히 하는 말로 칼크(calque)인 셈이다. 


이쯤되면 독일어와 같은 계열로서 게르만어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영어에서 participate와 같은 뜻을 가지는 동사가 partake 혹은 take part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영어에서도 독일어와 같이 유사한 방식으로 번역차용을 시도한 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라틴어를 잘 아는 영문학자라면, 혹은 영어에 친숙한 독일인이라면 셋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영어를 외국어로서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왜 서로 연관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이런 배경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절대로 잊지 못하게 된다.


다만 독일과는 달리 영국은 라틴어의 후손인 프랑스어를 쓰는 노르망디 공국의 직접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기에 수많은 어휘에 번역차용되지 않은 채 라틴어 접사와 어근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단어들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고유어보다 더 고급스럽고 학술적인 느낌을 풍기는 것처럼 영어에서도 이런 라틴어/그리스어 형태가 남아있는 단어가 고유어보다 더 상위 언어라는 느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격식을 갖춘 표현에서는 아마도 take part in~을 쓰기보다는 participate in~을 쓰는 게 낫다고 제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라틴어 접사와 어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스페인어를 배우다가 영어와 정말 비슷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바로 이런 단어들을 익힐 때이다. 라틴어로 놓다(pōnere)라는 명사에는 수많은 접두사가 붙어 다양한 동사들을 파생시키는데, 가정하다(sub- + pōnere = suppōnere), 반대하다(ob- + pōnere = oppōnere) 등이 있다. 스페인어로는 suponer, oponer인데 영어로는 suppose, oppose가 된다. 재미있게도 독일어는 이 두 동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모두 받아들이는데, '가정하다'의 경우 아래(unter-)라는 접두사에 놓다(stellen)을 붙인 번역차용으로서 unterstellen을, '반대하다'의 경우 대조의 의미를 가진 entgegen-에 앉히다, 놓다(setzen)를 붙인 번역차용으로 entgegensetzen을 파생어로 만들어 각각 사용한다. 하지만 라틴어 어근이 살아있는 동사로도 사용하는데 supponieren, opponieren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이런 단어들은 과거분사를 만들때 접두사 ge- 없이 -iert 형태를 가진다.) 


아무튼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영어는 프랑스어를 쓰는 지배층의 영향으로 라틴어/그리스어 어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고, 독일어는 이런 어휘들을 독일어 단어로 번역차용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쯤되어서야 게르만어군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영어의 화학원소 이름이 프랑스어쪽에 더 가까운지, 독일어는 왜 그리 번역차용된 이름이 많은지 이해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수소(水素)의 경우 '물을 만드는 것'이란 뜻으로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가 그리스어 어근을 활용해서 hydrogène이란 프랑스어 이름을 처음 지었는데, 영어는 그대로 받아들인 까닭에 hydrogen이지만, 번역차용의 습관이 강한 독일어는 물(Wasser)을 만드는 물질(Stoff)라는 뜻의 Wasserstoff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