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실로 다양한 말들로 조언을 해 주시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더라도, 잘 맞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그냥 아무 말 없이 이해하고 넘어가줄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조언은 거의 20여년동안 우리 아버지께서 부르짖던 충고와 상당히 일치하는데 전자는 이 격언을 잘 지켜왔기에 그 열매를 맛보고 권하는 것이며 후자는 이 격언에 어긋난 길을 걸어왔기에 상당힌 불이익을 맛보고 '너만은 제발..' 이라고 애끓어 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 유전자는 교수님보다 아버지에 더 가깝기에 사실 나도 아버지의 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농후한데 이는 델포이 신전의 아폴론 신탁만큼이나 선결정적이다. 미천한 인간의 노력으로 다소 개선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긴 했어도 이 본성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꽤 어렵지 않게 앞서 달려왔던만큼 자존감도 높을대로 높을지니 (실험실 후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우매한 중생들을 보면서 그저 속앓이를 하며 경멸의 화살을 속으로 ㅡ 가끔은 겉으로 ㅡ 슉슉 날릴 뿐이다.

 

나는 욕심이 많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이 부쩍 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많은 긍정적인 평가와 호의를 받고 싶어하는 성향이 생겼다. 이는 결국 부정적으로 날 보는 사람들(및 나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 여겨지는 심사위원들)을 가차없이 내 테두리 밖으로 내쳐내는 행동양식을 낳았다. 나는 (반공연 유도규 기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수왕국의 왕이며 내 뜻에 반하는 자에게는 추방 명령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대학원 초반에는 그런 성향이 엄청 강했는데, 4년차 접어들면서부터 상당히 가라앉았다. 뭐 그러라지, 오히려 귀찮지 않아서 편하네, 관심있는 듯 무관심하게 그런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이 수많은 내 주변 사람들을 관리하는데 내겐 주효했다. 어차피 나는 수백명에 달하는 전화번호부 목록 속 사람들을 하나같이 귀하게 챙겨 줄 능력도, 자신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갱생된 건 아닌 거 같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 격노하고 싸우고 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예전의 불같던 적극적인 대화요청이나 SNS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니고 보다 교묘하고 직접적인 비아냥과 비꼼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역시나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길은 여전히 멀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