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알마티(Алматы)에 있는 우리집에 도착한지 나흘째가 되었다. 8월 9일에 도착하자마자 글을 올리지 못한 것은 짐을 정리하고 자기에 바빴던 늦은 도착 시간 때문이기도 했지만 ㅡ 게다가 알마티행 비행기는 50분 지연 출발하여 생각보다 꽤 늦은 시간에 알마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ㅡ 도착하고나서 바로 그 다음날 새벽부터 1박2일간 여행을 다녀왔기에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알마티는 생각보다 잘 정리된 발전 도상의 도시였다. 지금은 비록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수도가 북부의 아스타나(Астана)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알마티는 나라의 으뜸가는 대도시요 많은 물적, 인적 자원들이 모이는 허브이다. 도착 직전에 비가 많이 내렸지만 시간이 좀 흐르니까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대로 그쳐버렸고, 날씨는 지옥불같았던 한국의 한여름 날씨를 잊게 해 줄만큼 서늘하였다. 우리 네가족은 일전에 프리토리아(Pretoria)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 알마티에서 재회하였고, 드넓은 방과 좋은 전망을 가진 집에서 편안히 하룻밤을 보냈다.


1박2일간 다녀온 여행지는 알마티로부터 동쪽으로 약 200 km 정도 떨어진 지역이었다. 이곳에는 유명한 차린 협곡(Чарынский Каньон), 알틴-에멜 국립공원(Нацональныий парк - Алтын-Эмел)이 있었고 서쪽으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일리 강의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세워진 댐에 의해 인공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캅차가이 호수(Капцагайкое Водохранилище) 근처의 휴양지가 있었다. 1박2일의 여행은 우리 가족만 다녀온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같이 지내며 교류하는 다른 한인 네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것이었다.


정말 많이 걸어다니면서 많이 먹고 많이 마셨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협곡은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었고, 협곡 아래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까지 갔다가 원래 위치로 (아주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돌아왔다. 계곡에는 주로 슬라브 계통의 카자흐스탄인들이 피서를 와 있었는데 훌러덩 벗는 남녀의 몸매가 왜 이리 다들 좋으신지... 왜 이곳 여자들이 그리도 칭송을 받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밤늦게 도착한 알틴-에멜 국립공원 내 호텔에서는 카자흐스탄 음식을 아주 한꺼번에 많이 맛볼 수 있었다. 특히 교재에서나 볼 수 있었던 꼬치구이 샤슬릭(шашлык)을 맛보면서 행복감에 젖었고, 같이 나온 보드카(водка)는 몇 잔을 들이킨 지 모르겠다. 카자흐스탄의 주식인 리뾰쉬까(лепёшка, 둥글고 큰 빵)와 쁠롭(плов, 기름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 볶음밥)을 원없이 먹었다.


국립 공원은 장대하게 펼쳐진 스텝 지역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황야와 가끔씩 돌아다니는 노루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과 양과 나귀들, 한없이 넓어보이는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내게 '너는 이런 거 처음 보지?' 라고 태평하게 묻는 듯 했다. 국립공원 관광의 절정은 거대한 사구로 구성된 '노래하는 사막'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그렇게 고운 모래로만 이뤄진 사막 지형을 맨발로 올라보았다. 약 150 m 높이의 거대한 사구였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휘파람 소리같은 게 들리곤 했다. 아마도 바람에 의한 모래 입자들의 진동이 사구의 반폐 공간에서 공명하여 그와 비슷한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전날 비가 좀 내려서 그런지 아주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 모래 사막을 맨발로 걸어 오르내리는데 기분이 색달랐다.


캅차카이 호수에서는 한국에서도 못 해 본 바나나 보트를 탔다. 오랜만에 시원한 호수에 몸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니 스트레스가 확 가시는 것 같았다. 이 드넓은 호수가 댐에 의해 생겨난 인공 호수라니! 산이 많고 언덕 지형이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꿈도 못 꿀 광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숫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여기에는 슬라브 계열 뿐 아니라 카자흐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띠었다. 바나나 보트에서 4번인가 떨어져 아주 다들 보트에 오르느라 기진맥진 할 법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한 사람당 500 텡게(тенге, 카자흐스탄의 통화로 현재 100 텡게가 730원 정도 한다.) 정도로 그리 비싸지는 않았고, 그 맑고 깊은 호수 중앙에 풍덩 빠지는 가격으로는 오히려 싼 게 아닌가 싶었다. 아,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 이 근처에서 위구르 민족의 주식이자 면 요리의 시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라구만을 먹어보았다.


오늘부터는 알마티 시내와 근교를 천천히 돌아볼 예정이다. 어차피 집을 중심으로 해서 여유있게 돌아다닐 예정이니만큼 원하는 대로 먹고 자고 놀면서 알마티 생활을 즐기려고 한다. 아직도 카자흐스탄의 정체성과 카자흐 민족의 정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기는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려고 한다. 그동안 약간 공부해 둔 러시아어를 써 먹어 보면서 말이다 ㅡ 그런데 슬프게도 알틴-에멜 국립공원 여행 중 내게 말을 걸어오는 카자흐인에게 써 먹은 최초의 러시아어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러시아어를 말할 줄 모릅니다. (Я не могу говорить по-русски.)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